극장은 시베리아에, 감독·배우는 하와이에

입력
2021.08.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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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100만 명 달성이 그리 어려운 일인지 예전에는 몰랐다. 지난달 28일 ‘모가디슈’가 개봉하기 전까지 올해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은 ‘발신제한’이었다. 14일 연속 흥행 1위를 차지하며 모은 관객은 95만 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일상을 습격하기 전인 2019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3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어느 정도 제작비가 들어간 상업영화로선 ‘돈 좀 벌었다’ 할 수 없는 관객 동원이다.

이달 들어 극장가 분위기는 일순 바뀐 듯하다. ‘모가디슈’는 3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달 선보인 ‘싱크홀’은 200만 고지를 향하고 있다. 지난주부터 상영된 ‘인질’은 100만 관객을 맞을 태세다. 코로나19를 뚫고 백만 단위 관객몰이에 성공한 한국 영화가 3편이나 되니 빙하기 같던 극장가 상황은 좀 나아진 걸까.

여름은 극장가 최고 대목이다. 특히 휴가가 몰리는 8월은 1년 장사를 가름하는 시기다. 2019년 8월 극장을 찾은 관객은 2,478만 명이다. 올해는 26일까지 693만 명이 극장 영화를 즐겼다. 지난해 8월은 883만 명이 관람했다. 코로나19 이전은커녕 지난해만도 못한 상황이다.

극장 주머니 사정은 관객 수치보다 더 나쁘다. 국내 3대 멀티플렉스체인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은 올해 여름 시장을 위해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모가디슈’와 ‘싱크홀’에 한해 제작비 50%에 해당하는 극장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극장들은 한 푼도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극장은 원래 매출의 50%가량을 가져간다). 코로나19로 개봉을 주저하는 화제작들을 극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극장은 ‘모가디슈’의 경우 관객 180만 명가량, ‘싱크홀’은 80만 명 정도 넘어선 뒤부터야 수익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가 분투하면서 극장 경기는 북극권을 벗어나 겨울 시베리아 벌판쯤에 이르렀다고 할까.

극장가 밖은 다르다. 유명 배우와 저명 스태프는 하와이쯤에서 일하는 듯한 요즘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경쟁이 격해지면서 이들의 몸값이 달아오르고 있어서다. 상업영화를 한 번쯤 만들었던 감독은 구인난이다. 경력 있는 촬영감독 등은 웃돈을 줘도 구하기 어렵다. 이름난 배우들 캐스팅은 더더욱 힘들다. “요즘 제작진 꾸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목소리가 영화계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극장이 붕괴 직전 위기를 겪는 상황과 비교하면 부조리하게 느껴질 정도다.

제작을 오래 전 완료하고도 코로나19로 개봉을 못하는 상업영화가 60편 정도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앞다퉈 극장가에 쏟아질 전망이다. 1년 넘게 스크린을 채울 만한 물량이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스태프와 배우들이 OTT로 몰리면서 영화 제작 공동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코로나19 극복 1년여 뒤 극장들은 상영할 만한 화제작이 급감해 2차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영화계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도 영화보다 OTT 콘텐츠 제작 열풍이 뜨겁다. 극장이 영화산업 주류 플랫폼이었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영화에 있어 극장만큼 돈 벌어다 주는 플랫폼은 아직 없다. 산업 환경이 급변하는 혼돈의 시기엔 특단의 정책이 필요하다. 영화 제작을 적극 유도해 영화산업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이 절실한 때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