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한국사회 페미니즘에 대한 조직적인 백래시(반발)를 막기 위한 전국 릴레이 규탄시위를 이끈 '해일'팀의 김주희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권을 향해 정면으로 책임을 물었다. '표심'을 위해 페미니즘을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소환한 정치권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백래시를 불렀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날 "남성 중심적인 정치계가 소위 이대남의 민심을 반영하여 나쁜 페미니즘을 만들고, 공공의 적처럼 프레이밍 한다"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어 "안티 페미니즘은 이대남의 표를 얻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라면서 "정치계가 앞다퉈 젊은 남성들의 '역차별' 정서를 자극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렴하는 동안 여성인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살됐다"라고 했다.
해일은 특히 이준석 국민의당 대표와 같은 당의 하태경 의원, 유승민 전 의원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정치인이 나서서 차별에 힘을 실어주는 지금, 정말 성 평등한 시대가 도래했는가"라고 물었다. 이 대표는 20대 남성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여성 할당제 폐지와 반(反)페미니즘을 공공연히 내세웠고, 하 의원과 유 전 의원은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이런 정치권의 움직임을 두고 "수많은 지표가 대한민국에서 단 한번도 성평등이 실현된 적이 없음을 보여줌에도 여성혐오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계는 여성을 동등한 유권자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해득실에 따라 젠더문제에 편승, 혐오에 손을 놓는 일은 국민의힘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 역시 지적됐다. 지인영 해일 공동대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비방하려 등장했던 '쥴리 벽화'를 언급하면서 "정치 속에서 여성은 유구하게 사물화되고 여성혐오는 정치적 전략으로 쓰여져 왔다"라고 했다. 서울 종로 관철동 한 서점의 외벽에 그려진 해당 벽화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김씨의 '유흥업소 종사 의혹'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지 대표는 "거센 비난을 받고 벽화는 현재 지워진 상태이나, 어떤 정치인을 공격하기 위해 배우자를 희화화 하는 것은 명백한 여성혐오"라고 했다. 이어 "여기서의 여성 혐오란 단순히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닌,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고 외모 꾸밈이나 성적 대상화, 남성의 부속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의미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페미니즘이 특정 집단의 분노를 자극, 지지를 얻으려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풀어가는 의제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페미니즘의 목표는 여성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지적, 이를 개선하여 성평등을 이루는 데 있다"라고 했다. 또 "마땅히 논의돼야 할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음에도 정치계는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페미니즘을 악마화하는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해일은 부산을 시작으로 인천, 경남, 포항, 광주, 대전을 거쳐 이날 서울에서 7월부터 두 달간 이어진 릴레이 규탄시위의 대장정을 마쳤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놀이처럼 자리잡은 여성혐오 문화와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 수익을 내는 혐오경제, 이런 현실을 방관하거나 편승하는 정치권과 언론이 주된 성토의 대상이었다.
지난달 4일 해당 단체를 만든 김 대표는 올해 초 자살예방센터가 운영하던 '20대 여성들의 생명 사랑을 실천하는 시스터즈 키퍼스' 게시판이 혐오 댓글로 도배되는 일을 계기로 관련 활동을 결심했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높아진 여성들의 자살률을 낮추려는 사업이었지만 일부 남성들이 ‘역차별’이라고 반발, 폐지를 요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여성의당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김 대표는 주변의 지인들과 뜻을 모아 해일을 꾸렸고, 대학생이나 직장인 등으로 이뤄진 이들 단체는 방학이나 휴가기간에만 활동할 수 있는만큼 이달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