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에 대한 짧은 체험기

입력
2021.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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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는 미국 속담이 있다. 다른 사람이 가진 물건이나 상황이 내 것보다 나아 보이는 편향을 지적하는 말이다. 집에 작은 정원이 있어 여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잔디를 깎는데, 정말 옆집 잔디가 더 좋아 보인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는데 거리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발 밑 정원은 잡초도 잘 보이고 그늘진 구석 잔디가 벗겨진 곳도 눈에 띄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옆집 정원은 결함은 안 보이고 고르게 자란 잔디만 보이는 것이다.

한국 사회학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이 속담을 자주 떠올린다. 동료들은 미국과 비교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반면 나는 미국의 병든 구석들을 비판하면서 한국이 잘 하고 있는 점들을 강조하곤 한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들을 분석하고 드러내는 것이 사회학자의 일이니 동료들의 비판적 시선이 당연한 거지만, 가끔 이웃집 잔디 보듯 거리를 두고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일이 있어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나에게는 처음으로 한국 사회가 팬데믹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델타 변이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더딘 백신 접종으로 ‘K 방역'의 신화가 무너진 상황이라지만, 미국의 무력한 대응에 익숙한 내 눈에 한국의 코로나 대응은 신선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방역복을 입은 직원들이 승객들의 체온을 재고 연락처를 확인하고 앱 설치를 돕고 목적지로 이동하는 교통편 안내까지 긴 과정을 신속하게 해내는 것을 보면서, 과연 미국 공항에서 같은 과정을 거친다면 얼마나 걸렸을지 궁금했다. 더 인상적인 것은 거리두기 4단계에도 놀랍도록 정상에 가까운 서울의 일상이었다. 거리는 활력이 넘쳤고 잠깐 들린 대형 서점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식당을 운영하는 분들에게는 힘든 시기지만, 거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았던 미국 도시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식당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도 생소해 보였다.

이렇게 정상에 가까운 일상에도 인구당 확진자가 미국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것은 역시 K방역의 힘이고, 그 힘의 원천은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라는 게 내 짧은 관찰의 결론이다. 새벽에 나가 본 한강변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도 예외없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접촉자 추적조사를 위한 확인 절차를 모두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과연 미국이 처음부터 코로나를 효과적으로 억제할 사회적 역량이 있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짧은 관찰에서 느낀 아쉬움이 있다면 정부가 시민들의 협조를 너무 당연시하는 게 아닌지, 그리고 때로 불필요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었다. 가령 일반 코로나 검사는 보건소에서 무료로 하면서 왜 출국용 검사는 세금을 내는 시민들도 지정 병원에서 비싼 비용을 내고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공장소에서 하는 추적조사 절차에서 어떤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는 어떻게 보호되는지도 궁금했다. 반면 정부의 재난지원금 규모는 너무 작아 보이고 백신 접종률은 OECD 바닥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정책들의 이 초라한 성적표를 보면서 국민들의 희생에 의지해 위기를 극복해 온 한국 역사의 긴 그림자를 떠올린다면 너무 가혹한가?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