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4·토론토)의 강점은 꾸준함이고, 그걸 상징하는 지표는 단연 평균자책점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엔 모두 무너지고 있다. '전가의 보도' 체인지업 제구에 애를 먹으며 한번 잘 던지면 그 다음엔 부진하는 롤러코스터 투구를 반복하고 있다. 류현진은 27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의 로저스센터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3.2이닝 동안 홈런 3방 등 안타 7개를 맞고 7실점으로 고개를 숙였다. 팀이 7-10으로 패해 류현진은 시즌 7패(12승)째를 안았다. 7이닝 무실점의 시즌 최고 호투로 승리한 닷새 전 디트로이트전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올 시즌 최소 이닝, 최다 실점 타이 기록이다. 올해 25차례 선발 등판에서 4회를 마치지 못하고 내려간 것도 벌써 세 번째다.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도 12차례로 절반에 못 미친다. 수비 불안과 타선 침묵 속에서도 최소 실점으로 버티며 극찬을 받아 왔던 류현진에겐 낯선 모습이다.
류현진의 마지막 자존심인 평균자책점도 마지노선 붕괴 위기에 놓였다. 이날 부진으로 시즌 평균자책점은 3.54에서 3.88로 치솟았다. 특히 기복이 심해진 8월 5경기 평균자책점은 4.88에 달한다. 7월까지만 해도 커리어 통산 평균자책점이 2점대였던 류현진은 8월 부진 속에 3.09로 3점대로 올라갔다. 류현진은 KBO리그 데뷔 첫 해(2006년)부터 평균자책점 2.23을 기록했고, 2010년에는 KBO리그 마지막 1점대 평균자책점(1.82)을 찍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부상과 재활에서 탈출한 2018년 82.1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지만 1.97을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2019년엔 아시아인 최초로 평균자책점 1위(2.32)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토론토 이적 첫 시즌인 지난해에도 2.69로 이름값을 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중에서 류현진(2.30)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은 투수는 현역 최고 투수 중 한 명인 제이콥 디그롬(2.10·뉴욕 메츠)뿐이다.
다승왕 경쟁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류현진에겐 평균자책점이 더 소중한 기록이다. 류현진은 이날 등판 전까지 약 10차례 남은 등판에서 매 경기 6이닝 1자책 정도로 투구를 해야 2점대 진입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3점대를 지키는 것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류현진이 부진한 사이 전날 화이트삭스전에서 구단 왼손 투수 최초로 14개의 삼진을 잡아낸 로비 레이(30)가 사실상 류현진을 밀어내고 팀내 1선발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레이는 8월 등판한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하면서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점 2위(2.72)에 올라 있다.
류현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일단 제구가 문제였다. 지난 경기보다 여러 구종의 제구가 잘 안 됐다"면서 "한 번에 무너지면서 한 이닝에 대량 실점이 많이 나오는데 이는 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이런 장면이 반복되고 있는데 앞으로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