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과 맞서 싸웠던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사령관이 “우리의 동맹들이 싸우기를 멈췄기 때문에 우리도 싸움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싸우거나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서 1만5,000명의 육군 부대를 통솔해 온 3성 장군 사미 사다트는 25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게재된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나는 올해 아프간군을 지휘했다. 우리는 배신당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우선 “아프간 육군이 싸울 의지를 잃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아프간군이 전의를 상실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다트는 “미국 동맹으로부터 버려졌다는 느낌과 지난 몇 달간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난 우리에 대한 무시가 점점 커졌다”며 “바이든 대통령과 서방 관리들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데 대해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아프간군을 비난하고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아프간군이 싸우려 하지 않았다’는 미국의 지적과 관련, 사다트는 지난 20년간 전체 병력의 5분의 1인 6만6,000명이 전사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세 가지 반박 이유를 제시했다. 첫 번째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탈레반의 평화협정을 꼽은 그는 “지난해 2월 카타르 도하에서 체결된 미국과 탈레반의 협정으로 미군 철수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아프간군의 공세적 전투 작전은 줄어든 반면, 탈레반의 공격은 더 대담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계속 싸웠으나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획을 고수하겠다고 확인하면서 모든 것이 내리막길로 치달았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는 군사장비 지원 중단과 함께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미국의 첨단 기술 장비로 무장하고 훈련을 받았던 아프간군은 미군 지원이 끊겨 버린 탓에 제대로 된 공격도 한 번 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사다트는 “군수업체들이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기술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고, 이들 업체가 소프트웨어를 가져가는 바람에 첨단 무기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 미군 철수를 확인한 탈레반은 차량 폭탄 테러 등 공격 횟수를 크게 늘렸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에 정권을 넘겨 주게 된 세 번째 이유로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를 꼽았다. 사다트는 “(정부의) 부정인사와 관료주의, 부패는 군 사기를 저하시켰고, 우리로 하여금 배신감을 들게 했다”라며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날, 나는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발령받고 카불 보안을 보장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이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이 나라를 버리고 달아난 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다트는 “우리는 정치와 대통령들로부터 배신당했다”면서 “아프간 전쟁은 아프간만의 전쟁이 아닌 국제전이었으며, 하나의 군대만으로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쟁은 정치적 실패에서 비롯된 군사적 패배”라고 규정하면서 글을 마쳤다. 미국과 아프간의 두 대통령이 탈레반의 위협 속에 아프간군과 아프간 시민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