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군 사령관의 항변 "우리는 정치와 대통령들한테 배신당했다"

입력
2021.08.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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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기고... '아프간군 스스로 안 싸워" 美지적 반박
"미국이 싸우길 멈추면서 더 싸울 수 없어졌다" 주장
①트럼프 행정부-탈레반 평화협상 이후 상황 변화
②미군의 지원 중단 ③아프간 정부 부패 등도 지적
"아프간전, 정치적 실패서 비롯된 군사적 패배" 규정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과 맞서 싸웠던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사령관이 “우리의 동맹들이 싸우기를 멈췄기 때문에 우리도 싸움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싸우거나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에서 1만5,000명의 육군 부대를 통솔해 온 3성 장군 사미 사다트는 25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게재된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나는 올해 아프간군을 지휘했다. 우리는 배신당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우선 “아프간 육군이 싸울 의지를 잃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아프간군이 전의를 상실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다트는 “미국 동맹으로부터 버려졌다는 느낌과 지난 몇 달간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난 우리에 대한 무시가 점점 커졌다”며 “바이든 대통령과 서방 관리들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데 대해 근본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고, 아프간군을 비난하고 있는데, 이를 바라보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아프간군이 싸우려 하지 않았다’는 미국의 지적과 관련, 사다트는 지난 20년간 전체 병력의 5분의 1인 6만6,000명이 전사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세 가지 반박 이유를 제시했다. 첫 번째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탈레반의 평화협정을 꼽은 그는 “지난해 2월 카타르 도하에서 체결된 미국과 탈레반의 협정으로 미군 철수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아프간군의 공세적 전투 작전은 줄어든 반면, 탈레반의 공격은 더 대담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계속 싸웠으나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 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획을 고수하겠다고 확인하면서 모든 것이 내리막길로 치달았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는 군사장비 지원 중단과 함께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미국의 첨단 기술 장비로 무장하고 훈련을 받았던 아프간군은 미군 지원이 끊겨 버린 탓에 제대로 된 공격도 한 번 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사다트는 “군수업체들이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기술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고, 이들 업체가 소프트웨어를 가져가는 바람에 첨단 무기를 제대로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 미군 철수를 확인한 탈레반은 차량 폭탄 테러 등 공격 횟수를 크게 늘렸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에 정권을 넘겨 주게 된 세 번째 이유로는 아프간 정부의 부패를 꼽았다. 사다트는 “(정부의) 부정인사와 관료주의, 부패는 군 사기를 저하시켰고, 우리로 하여금 배신감을 들게 했다”라며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날, 나는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발령받고 카불 보안을 보장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이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이 나라를 버리고 달아난 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다트는 “우리는 정치와 대통령들로부터 배신당했다”면서 “아프간 전쟁은 아프간만의 전쟁이 아닌 국제전이었으며, 하나의 군대만으로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쟁은 정치적 실패에서 비롯된 군사적 패배”라고 규정하면서 글을 마쳤다. 미국과 아프간의 두 대통령이 탈레반의 위협 속에 아프간군과 아프간 시민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항변한 셈이다.

강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