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막판에 멈춰 세운 배경에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있었다. 국회법을 고리로 한 야당 요구를 수용한 것이지만, 강조해온 여야 협치를 이어가려는 박 의장의 고민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은 그간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처리 시한을 '8월 임시국회'로 규정하고, 25일 본회의 처리를 공언했다. 이날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됐을 때만 해도 오후 2시에 예정된 본회의 처리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상황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 박 의장을 찾아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 연기를 요구하면서 급변했다. 김 원내대표는 비공개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국회의장께 오늘 당장 본회의를 개회해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상임위 통과 후 본회의 상정에 필요한 기한(1일)을 규정한 국회법 제93조 2항을 명분으로 제시했다.
박 의장이 본회의 연기를 "국회법을 존중한 결정"이라고 밝힌 이유다. 그러나 박 의장이 본회의 개회를 강행할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의 협의를 거칠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합의가 아니라 협의라고 규정돼 있는 만큼, 국회의장이 의사국장을 각 당에 보내 의견을 듣기만 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박 의장의 결정은 여야 협치를 주문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난달 23일 박 의장 주재로 21대 국회 출범 이후 1년 2개월 만에 원구성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로 여야 관계는 다시 얼어붙고 있다. 전날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가 국회를 찾아 언론중재법 철회를 요구하는 언론인 2,636명의 서명을 전달한 점도 기자 출신인 박 의장에게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 의장이 언론중재법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내용을 두고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여야 원내대표가 오는 30일 본회의 일정에 합의하면서 '시한부 협치'로 끝날 공산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