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판다에 위로 받았다는 관람객에 울컥… "판다 할배 되길 잘했어요"

입력
2021.08.26 11:00
첫 돌 맞은 판다 돌보는 33년차 강철원 사육사 
"사춘기 앞둔 푸바오, 독립과 대나무 먹기 목표"
판다 보며 우울증 이겨냈다는 관람객도 큰 힘


6일 오전 9시 30분,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 들어서자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행복을 주는 보물)가 대나무 잎을 가지고 장난 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푸바오는 지난해 7월 20일 아빠 러바오(9세∙기쁨을 주는 보물)와 엄마 아이바오(8세∙사랑스러운 보물) 사이에서 태어난 암컷 아기 판다다.

푸바오는 한국에서 태어난 첫 판다이기도 하지만 판다 출산이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개장을 1시간가량 앞두고 '출근'한 엄마 아이바오를 따라 나온 푸바오는 한시도 가만 있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였다.


푸바오는 이미 글로벌 스타다. 푸바오가 사육사 다리에 매달려 놀아달라 조르는 모습이 담긴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국내외에서 1,200만 건을 넘었다. 지난달 유튜브 라이브로 열린 랜선 돌잔치에는 5만 명이 동시 접속해 푸바오의 첫 생일을 축하했다.

푸바오가 건강하게 지내는 데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33년차 사육사이자 '판다 할아버지'로 불리는 강철원(52) 에버랜드 사육사의 힘이 컸다. 강 사육사는 최근 판다 육아기를 담은 책 '아기 판다 푸바오'를 출간하기도 했다. 강 사육사에게 그간의 판다 이야기를 들어봤다.

'판춘기' 푸바오, 내년 초 엄마로부터 독립 가능성

-푸바오가 훌쩍 자란 모습이다. 건강 상태는 어떤가.

"197g으로 태어난 푸바오는 1년이 지난 현재(24일 기준) 44.8㎏으로 엄청나게 자랐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엄마 젖을 먹고 있지만 이제 대나무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사람 나이로 치면 4~5세 정도인데 '판춘기(판다의 사춘기)'가 온 느낌이다.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고, 이따금 행동을 만류하는 엄마 아이바오에게 대들기도 한다."

-얼마 전 푸바오가 돌잔치에서 워토우(판다가 먹는 빵)를 집어 화제가 됐다. 중국에서도 돌잡이 행사를 하나.

"중국 판다 번식 기지에서는 1년에 15~20마리가 태어나는데 한 살이 되면 돌잡이 행사를 따로 하진 않고 기념 기자회견을 한다. 푸바오가 뭐를 잡을지 궁금했는데 워토우에서 엄마 냄새를 맡았던 것 같다. 아이바오는 워토우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다."

-현재 푸바오를 사육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지금 푸바오에게 주어진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엄마 젖을 떼고 대나무를 먹는 것, 다른 하나는 독립이다. 판다는 육식동물의 장 구조를 갖고 있지만 주식이 대나무라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한다. 이 때문에 대나무를 잘 먹는 게 중요하다. 판다는 보통 1년반에서 2년이 되면 독립을 하는데 그동안 엄마로부터 방어기술, 공격기술을 배운다. 대나무를 잘 먹고 건강하게 성장하면 내년 초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바오는 현모양처... 푸바오, 3년 뒤 중국 돌아갈 수도

-판다 임신이 정말 어렵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

"판다는 번식이 정말 힘들다. 판다의 가임기는 1년에 한 번, 그것도 1~3일에 불과하다. 판다의 80% 이상이 살고 있는 중국 쓰촨성 판다번식연구소에서도 짝짓기 성공이 쉽지 않아 인공수정까지 할 정도다. 더구나 판다는 임신기간(보통 4개월)이 개체마다 다른 데다 출산 직전까지도 임신 여부를 확신하기 어렵다.

암수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의 식욕이 왕성해지다 분만 1개월 전부터 식욕이 뚝 떨어지고 호르몬에 변화가 생긴다. 하지만 짝짓기 후 임신이 아닌데 임신 증상을 보이는 판다들도 있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전 세계 2,3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판다의 임신과 출산은 매우 드문 일이다. 더욱이 판다 새끼는 매우 연약해 태어나도 일주일 내에 죽는 경우가 많다. 중국을 포함해 세계에서 태어나는 판다는 매년 평균 30마리에 불과해 판다의 임신, 출산소식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다.

-푸바오의 탄생이 더욱 기뻤겠다.

"2019년엔 아이바오에게 발정이 오지 않아 담당 사육사로서 스트레스가 컸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 같았다. 지난해 발정기 때는 코로나19로 인해 중국 판다 전문가가 한국에 들어오질 못했다. 포기하려던 찰나 러바오와 아이바오가 합방에 성공했다. 이때가 가장 기뻤다.

또 갓 태어난 판다는 체온 조절이 되지 않아 엄마가 빨리 품어주지 않으면 저체온증으로 문제가 생기는데 초보 엄마인 아이바오가 너무 잘해줬다. 아이바오를 현모양처라고 부르고 있다."

-푸바오는 중국으로 언제 돌아가나.

"성 성숙기에 접어드는 네 살 정도가 되면 중국으로 가 이성친구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4년도 정해진 건 아니다. 2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아직은 정해진 바 없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 취약종으로 지정한 판다는 모두 중국 정부의 소유다. 세계 어느 곳에서 태어나 머물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판다할아버지' 별명은 1999년 돌아간 판다 '리리'덕분

-'판다 할아버지'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게 됐나.

"1994년 한국에 왔다가 IMF 외환위기로 1999년 중국으로 돌아간 판다 '리리' 덕분에 얻은 별명이다. 2016년 러바오와 아이바오를 데리러 중국 쓰촨성을 찾았을 때 리리가 다른 판다 사육기지에 있다는 얘길 들었다.

수소문 해 만나러 갔더니 리리가 내 목소리를 듣고 두리번대다 천천히 쳐다보더라. 이 모습을 본 중국 전문가들이 '진정한 판다 아빠'라고 불렀다. 이제 할머니가 된 리리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알아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이후 푸바오가 태어나면서 판다 할아버지가 됐다."

-판다 할아버지가 말하는 판다의 매력은 뭔가.

"판다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매력적인 동물이다. 이동이나 번식에 취약하고 환경에 민감하다. 하지만 판다의 매력은 동글동글한 외모가 갖는 치명적인 귀여움이다. 먹고만 있어도 예쁘고, 자는 모습도 예쁘다. 뭘 해도 귀엽다."

"푸바오 보고 위로됐다는 관람객에 보람 느껴"

-기억에 남는 관람객이 있다고 들었다.

"코로나19로 판다월드는 예약 관람객만 받고 있지만 푸바오의 인기로 일일 방문객은 3,500~4,00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푸바오를 1주일에 4, 5번 보러 오는 관람객이 있다. 우울증으로 힘들었는데 푸바오를 보면 위로가 된다고 했다. 원래 손이 떨려 사진을 잘 못 찍는데 푸바오를 찍을 땐 손을 떨지 않는다고 하더라.

아기 판다를 돌보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일깨워줬다. 더욱 판다를 열심히 잘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어떤 점에 집중해 판다 가족을 돌볼 계획인가.

"야생동물은 아픈 곳을 감추려 하기 때문에 관찰을 잘하는 게 개체의 건강과 직결된다. 판다를 면밀하게 관찰해 변화를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이외에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동물 본연의 습성을 찾아주기 위한 활동인 '행동풍부화'다. 푸바오에게는 생일 선물로 미끄럼틀을, 더위에 취약한 판다 부부를 위해서는 대나무 죽부인을 만들어 줬다. 판다들이 잘 가지고 놀면 뿌듯하다. 앞으로 동물은 물론 관람객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