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수용론 불붙었지만… 여전히 높은 '심리적 장벽'

입력
2021.08.24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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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 반대' 국민청원, 하루 새 7000명 동의
"국회·청와대·법무부서 반대 시위" 조짐까지
"다문화 익숙지 않아… 코로나 경제난도 한몫"

탈레반 재집권으로 위험에 처한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의 여론은 싸늘하다. 다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 분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예민해진 집단정서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제기되고 집회가 이뤄질 조짐까지 보이는 가운데, 아프간 파병국으로서 책임감과 인도주의를 발휘해 난민 문제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난민 반대 국민청원에 하루 7000명 동의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난민 받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하루 만에 6,971명(오후 5시 기준)의 동의를 얻었다. 이 글은 아프간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청원인은 "코로나 장기화로 불우이웃이 넘치고 너무 힘든 상황, 자국민도 죽니 사니 하는 마당에 난민이라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청원인은 국내에 체류하는 아프가니스탄인을 강제 출국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서명에 참여했다는 30대 한모씨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정부가 자국민을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동조 이유를 밝혔다.

난민 수용 반대 집회도 열릴 조짐이다. 이른바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가 일어났던 2018년, 서울에서 난민 반대 집회를 주도했던 이형오 난민대책국민행동 공동대표는 "방역 문제로 대규모 집회까지는 어렵겠지만 국회·법무부·청와대 앞에서 공동 행동을 할지 여부를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아프간 난민을 적극 받아들였던 터키를 거론하면서 "터키는 (유럽연합 등) 다른 국가들로부터 난민 수용 비용을 받았고 문화권도 아프간과 가깝다는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면서 "사정이 안타깝다고 난민을 덮어놓고 받을 상황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난민에 대한 배타적 반응이 역력하다. 이른바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에 기댄 반대론도 적잖게 눈에 띈다. '맘카페'를 포함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제기되는, "무슬림 문화권에서 빈번한 여성 상대 범죄가 빈발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 커뮤니티 회원은 "난민 사정은 딱하지만 지금도 여자들이 살기 무섭고 어려운데 이슬람 문화권인 아프간 난민까지 받으면 더 무서운 삶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대했다.

미국이 한국 등 해외 미군기지에 아프간 난민을 수용할 거란 보도가 나오자, 미군기지가 있는 경기 평택시 등에선 동요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평택에 산다는 A씨는 "가뜩이나 외국인이 많은 지역인데 치안이 더 악화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치권·시민단체와 다른 '밑바닥 정서'

이런 기층 정서는 아프간 난민 수용에 열린 자세를 보인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입장과 사뭇 다르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캐나다, 독일 등 다른 나라는 이미 비행기를 띄워 아프간 난민을 자국으로 데려오고 있다"면서 "그런 방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단기 비자를 발급해 한국에 올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정치권에서도 최소한 아프간 현지에서 한국을 도왔던 400명가량의 아프간인은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임동진 순천향대 교수는 "당위적으로 생각했을 땐 난민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하고 다문화 비중도 낮아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면서 "코로나19에 따른 경제난까지 겹친 상황이라 시민들이 더욱 강하게 반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 난민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는 폭발력 있는 사회적 이슈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예멘 난민 사태 때도 서울 도심에서 6개월가량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집회가 이어진 전례가 있다. 특히 내년 대선 등과 맞물려 난민 문제가 파급력 있는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 교수는 "그간 난민 문제 해결은 선진국들이 분담해온 사안이고, 독일은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여 생산인구를 충당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면서 "한국 또한 난민 문제를 보다 체계적이고 현실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원다라 기자
이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