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쾌도난마의 스타일을 과시한다. 최근 유포된 캠페인 홍보영상 ‘민지(MZ)야 부탁해’에서다. 영상에서 윤 전 총장은 털털한 ‘석열이형’으로 설정됐으나, 그보다는 묵직한 힘과 과단성이 느껴지는 기업 총수 같은 모습이다. 그는 MZ세대를 뜻하는 ‘민지’의 호소라며 일자리 고갈부터 주택난까지 엄혹한 청년문제를 거론한다. 이어 젊은 참모진에게 해결에 나서자고 제안하지만, 좌중엔 곤혹과 주저의 분위기만 감돌 뿐이다.
무거운 침묵을 깨는 건 역시 ‘석열이형’이다. 그는 책상을 내리치며 “야, 민지가 해 달라는데 한 번 좀 해 보자! 같이하면 되잖아”라며 호쾌한 단안을 내린다. 영상은 윤 전 총장 캠프가 청년정책 아이디어를 모집하는 캠페인을 벌인다며 띄운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영상에서 청년들과 호흡하며 뒤엉킨 난제를 단칼에 풀어내는 고르디우스를 그리려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청 소감은 영 개운치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도 웃기지 못하는 철 지난 희극배우 같았다.
아직은 보수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윤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요즘 행보를 보면 참 답답하고 안쓰럽다. 윤 전 총장은 몇몇 영상 홍보나 반문(反文) 메시지를 내는 것 외에, 국민의힘을 점령군처럼 장악하는데 가장 큰 힘을 쏟는 모습이다. 최 전 원장 역시 홍보 이벤트나 반문 행보는 비슷하다. 다만 윤 전 총장 측의 공세적 세몰이에 대응해 일종의 응전 차원에서 ‘점잖게’ 세를 규합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당내 경선 승리, 물론 절실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훨씬 중요한 국정비전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놓치고 있다. 나아가 그러한 요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심될 정도다. 안 그렇다면 청년문제에 대해 윤 전 총장이 “이거 좀, 우리가 나서야 되는 거 아냐?” 하는 정도로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거나, 최 전 원장이 복지에 대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자립이 어려운 분들에게 정부가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구휼적 수준의 인식을 드러내는 걸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두 사람은 큰 도약을 이뤘다. 문재인 정권의 난맥상 속에서 소신과 원칙을 강건히 지키는 모습을 보였고, 마침내 국민적 신망을 딛고 정권 초월의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1차 도약'의 광휘에 취해, 그때의 에너지였던 법치와 상식, 우국적 결단 등을 다음 정부의 국정비전이라고 착각해선 곤란하다. 이전 같으면 정권에 대한 염증, 신망을 받을 만한 큰 인물론, 우국충정의 모습 정도만으로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민의 사회의식은 크게 진화했고, 정치적 요구 또한 첨예해졌다.
여권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가벼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드높은 지도자적 자의식에 빠져 허공을 유영하는 동안, 이 지사는 시대적 요구와 민심의 풍향을 반영한 나름의 구체적 정책 어젠다를 잇달아 내놓으며 정치판을 주도하고 있다. 기본소득을 포함한 ‘기본시리즈’부터 지방분권 강화에 이르는 일련의 화려하면서도 논쟁적인 정책목록들을 보라.
그걸 포퓰리즘으로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두 사람에 비해, 이 지사는 ‘빈자의 로빈 후드’로서 시스템 개혁의 방향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견고하게 넓혀나가고 있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두 사람은 더 이상 막연한 ‘옛노래’만 흥얼거려선 안 된다. 국민의힘 토론회가 두 사람의 전환적 인식을 보여줄 공식무대가 될 것이다. 윤이든 최든, 거기서 사회의식 진화에 맞춘 보수 변혁의 청사진과 기획을 제시하지 못하면, 용은커녕 가마솥 안의 미꾸라지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