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을 포함해 해외 미군기지에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임시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임시 난민촌으로 거론된 곳은 한국과 일본 독일 코소보 바레인 이탈리아의 미군기지다. 그러나 미군이 우리 영토의 기지에 난민을 데려오는 것은 정부가 난민을 수용하는 문제와 별개인 만큼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 국방부는 침묵하고 있으나 중동 미군기지 내 난민이 과밀한 상태를 감안하면 이런 문제가 한미 간 논의될 개연성은 높다. 주한미군 사령부가 “지시를 하달받지 못했으나 임무 지시가 내려지면 한국 정부와 협력해 나가겠다”며 여지를 둔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분류한 탈출 대상자는 현지 조력자와 가족 5만~6만5,000명인데 현재 1만5,000명가량만 대피한 상태다. 미군은 항공사 5곳의 민항기 20대까지 투입해 원격지로 이동시킬 계획이다. 주한 미군기지로 이송된다면 상당한 규모의 난민 유입은 불가피하다.
한미가 동맹으로서 국제 현안도 응당 분담해야 하나 난민 수용은 주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다. 충분한 사전 논의와 정부 동의 없이 결정된다면 정치·사회적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벌써 공방을 예고했는데 정치권은 일단 정부 대응을 지켜보는 게 우선이다.
다만 아프간 난민 사태는 외면하기 어려운 지구촌의 비극이자 공동 과제다. 이란, 파키스탄과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만 해도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유입으로 홍역을 앓은 유럽이 초긴장 상태에 빠진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들은 국제 인권기준에 맞춰 열린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9년 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난민법을 도입한 우리도 세계 10대 경제 교역국 위상에 걸맞은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아프간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혐오를 걷어내고 당장 400명에 달하는 현지의 한국 조력자 문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