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출근하지 마세요"... 채용 취소에 우는 청년 구직자

입력
2021.08.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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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구직자 A씨는 채용시험을 본 회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전화로 연봉협상까지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입사 시기가 한 달 미뤄지더니 출근을 앞두고 채용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19로 회사 경영이 악화됐다는 이유였다. A씨는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부모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며 "(물건처럼) 반품을 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청년 구직자 80% "코로나 유행 이후 채용 취소 늘어"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채용을 취소해 구직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채용 시장이 얼어붙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이 같은 '채용 갑질'이 빈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6일 청년유니온이 발표한 '채용 취소 인식 및 제도 개선 방향'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2.1%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채용 취소 사례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채용 취소에 대해 듣거나 실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2.9%였다. 설문조사는 올해 5월 5일부터 6월 9일까지 구직 경험이 있는 만 15∼39세 청년 280명을 상대로 이뤄졌다.

청년유니온이 취합한 피해 사례를 보면 기업이 채용 취소를 통보하면서 사유를 정확히 공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장이 합격을 통보한 후에 연락이 두절되거나, 채용이 취소된 뒤 같은 회사에서 또 채용 공고가 난 것을 발견했다는 이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 구직자 중에는 최종 면접을 앞두고 채용이 중단돼 1년 동안 대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채용 취소는 해고와 동일... 피해 보전 제도화해야"

사실 이런 식의 채용 취소는 대부분 위법이다. 근로기준법과 법원 판례에 따르면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회사가 직원에게 합격을 통보한 시점부터다. 근로계약서 작성 여부나 실제 근무 여부와 무관하게 채용 의사를 전달받은 순간부터 '채용 내정자'라는 법적 지위가 부여된다는 얘기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근로계약이 성립된 후 이를 취소하는 것은 근로자가 사기를 쳤거나 채용기업에 중대한 착오가 있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채용 취소는 해고와 동일한 행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적인 보호장치가 현실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회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 이 같은 법률 지식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데다, 법적 대응을 하더라도 채용기업의 고의나 과실이 있다는 점을 전적으로 구직자가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남표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채용 취소로 인한 금전적 손실과 정신적 피해가 막대하지만, 대응 방법을 잘 모르거나 설사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도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청년유니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9.6%(139명)는 채용 취소를 당해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피해 보전을 위해 휴업급여에 준하는 수준의 수당 지급을 제도화하고, 기업이나 인사담당자들에게 채용 취소는 명백한 근로계약 파기라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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