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모르게 줄줄 새는 유전정보? 신생아 유전체 검사 불법성 논란

입력
2021.08.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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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당국 조사 착수에 수사기관 고발도
유전정보 유출·윤리적 문제 우려…규제도 미비
"상품화 지양하고 선별 검사 순기능 집중해야"

지난해 2월 첫 아이를 낳은 전모(39)씨는 출산 직후 개인병원의 권유로 신생아 유전체 검사업체에 검사를 의뢰했다. 무료로 받는 선천성 대사이상과 청력 검사와는 별개로 25만 원을 들여 유전적 질환을 확인할 수 있는 비의료기관의 검사다. 마음을 졸이며 며칠을 기다린 끝에 '정상'이라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전씨는 "노산이고 아이도 한 명만 가질 계획이라 혹시 모를 희소질환까지 꼼꼼하게 대비하고 싶었다"며 "병원이 소개한 검사여서 유전정보 유출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씨뿐 아니라 많은 산모들이 병·의원을 통해 신생아 유전체 검사를 진행하지만 최근 한 업체가 법이 금지한 검사를 했다는 의혹으로 보건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발장이 접수돼 경찰도 수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믿음'과 달리 신생아 유전체 검사가 유전정보 유출 위험에 노출됐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아직 정부 차원의 관리체계와 지침도 명확하지 않아 무분별한 검사 상품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생명윤리법 위반 의혹에 유전정보 유출 우려

22일 유전자 검사업계에 따르면 신생아 유전체 검사 국내 시장 규모는 연 200억 원 정도다. 한 업체당 많게는 연간 3만 건가량 검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질병관리청에 신고된 유전자 검사기관 229곳 중 신생아 유전체 검사를 진행하는 비의료기관은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녹십자지놈, 캔서롭, 랩지노믹스 등이다. 매년 출산율은 줄고 있지만 산모의 고령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업계는 시장 규모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이 커질수록 유전정보 유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검사업체 중 한 곳인 EDGC사는 법적 허용 범위를 넘어 유전정보를 분석해 생명윤리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캔서롭에게 고발당했다. 캔서롭은 올해 5월 31일 EDGC사의 영업을 대행하는 보령바이오파마사도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 생명윤리법 시행령 제20조에 따르면 비만, 치매, 호기심 등 특정 유전자에 대해서는 검사가 금지되거나 의사의 판단하에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캔서롭은 고발장을 통해 'EDGC사의 검사가 진단용이 아닌 연구용 검사칩을 사용해 제한된 치매 유전자 검사까지 진행한다'고 주장했다.

EDGC사의 검사칩은 미국 유전체 분석기업 일루미나의 연구용 칩이라 유전정보가 해외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캔서롭은 "해당 칩을 사용하면 일루미나의 클라우드 서버에 검사 데이터가 그대로 올라간다"며 "미국 기업이 연구용 목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도 관련 신고를 접수해 불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현장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보령바이오파마 관계자는 "병원에서 의뢰하지 않는 검사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검사기관마다 사용하는 칩이 다르고 분석하는 방법도 달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전정보 해외유출 의혹에 대해서는 "일루미나 사는 장비 공급 업체로 검사 결과를 저장하는 클라우드 서버에 일루미나사가 접근할 수 없고 접근을 요청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신생아 유전체 검사, 효용성 있을까

의료계는 신생아 유전체 검사가 사후관리도 안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해당 검사 결과는 확진이 아니라 대형병원에서 별도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의학적 이해가 부족한 보호자가 정확성이 떨어지는 결과에 크게 충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과 교수는 "유전체 검사에서 양성 소견을 받고 공황상태에 빠져 찾아오는 보호자가 많은데, 검사해보면 큰 문제가 아닌 경우도 비일비재"라며 "의학적 영향에 대한 상담 등 안전장치 없이 유전체 검사가 이뤄지다보니 결과에 따라 보호자가 심리적 불안을 겪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아무 증상 없는 신생아를 비의료기관이 선별검사하는 자체가 과잉검사라는 시각도 있다. 이정호 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미리 안다고 치료도 못하고 보호자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유전자 정보까지 다 공개하는 게 옳은지, 적절성과 효용성에 대해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업화 지양…치료 가능한 희소질환 찾아야"

관할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이나 관련 규제는 미비하다. 생명윤리법에 유전정보 관련 규정이 포함돼 있지만 범위가 포괄적이고 대상도 모호해 규제와 지침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DTC(Direct To Customer) 유전자 검사 가이드라인을 배포했지만, 성인 위주의 지침이라 신생아 유전체 검사에 대한 내용은 전무하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비의료기관의 DTC 검사는 여러 위험성이 따라 지침을 배포했으나 신생아 유전체 검사는 의료기관을 통해 부모 동의를 얻고 진행하는 것이라 별도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정부가 시장 실태를 파악해 유전정보의 관리와 윤리적 책임 등 명확한 지침을 정립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정호 교수는 "치료도 못하고 불안만 조성하는 항목을 여러 개 검사해 상업화하는 걸 지양하고 치료가 가능한 질환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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