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핀 남편의 거짓말을 아내가 믿는 이유

입력
2021.08.1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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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조종사인 남편은 집을 자주 비웠다. 아내는 우연히 남편이 여승무원과 주고받은 연애 메시지를 발견했다. 남편에게 추궁하자 그는 잡아떼면서 "동료들이 내 이메일 계정으로 장난을 쳤다"고 지어냈다. 처음에는 의심했던 아내도 결국은 거짓말을 믿으며 남편의 동료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이 사례에서 아내가 남편의 뻔한 거짓말을 믿은 이유는 부부 사이를 깨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태도는 정신분석학에서 '열정적 무지'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진실을 마주하면 그것을 외면하는 정신과 환자들을 관찰하며, 라캉이 정립했다.

'열정적 무지'는 사회적 체제를 유지하는 데도 동원된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이 코로나19 확진자가 전무하다고 공언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팬데믹 사망자의 사인을 폐렴으로 분류했다. 이 경우 무지는 전략적 수단이다.

지젝과 함께 슬로베니아 학파를 대표하는 정신분석학자 레나타 살레츨이 썼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믿고 싶은 마음,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선진국 시민들의 심리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망라됐다. 탈진실 시대의 이면에는 빅데이터와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사회구조가 있다.

장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