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철수로 촉발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이 보수권을 중심으로 한 '한미동맹 위기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발을 빼는 미국의 면모가 확인된 만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아프간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가에선 미국-아프간 관계와 한미동맹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동맹 유지의 기준이 '국익'이라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실현의 핵심수단 중 하나인 한미동맹의 역할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밝혀왔던 것처럼 한국이나 유럽에서 미군을 감축할 의향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등은) 우리가 아프간에 주둔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라고 했다. 외부 적의 잠재성을 다루고 우리의 동맹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동맹국과 파트너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신성불가침하다"며 "대만과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서 미군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며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킨 이유를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물론 대만 등 주요 우방국에서 "과연 미국을 믿어도 되느냐"는 회의론이 일자, 설리번 보좌관이 나서 한국 등 주요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고 나선 셈이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강민국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17일 "아프간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미동맹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고, 같은 당 박진 의원은 "미국은 여론이 움직이는 나라"라며 "여론에 따라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입지가 약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프간 사례를 한국에 대입하는 것에 대해 "논리적 비약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중 포위망 구축이라는 목적을 가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실현을 위해선 한미동맹의 몸값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익이 없는 곳에서 미군을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의 국익이 쏠려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군사력을 집중하겠다는 의미"라며 "중국 견제를 위해서도 한미동맹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박재적 한국외대 교수는 "국익에 보탬이 안 된다면 미국은 언제든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인도·태평양 전략 집중은 물론 현재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는 미국 입장에서도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했다. 주한미군이 미국에 전략적 이익을 주고 있는 만큼 현 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는 얘기다.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의 연설문 작성 담당 보좌관이었던 마크 티센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의 발언이 한미 양국에서 비판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16일 "한국도 미국의 지원 없이 이런(탈레반) 공격을 받는다면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아프간 정부군의 군사력과 한국군의 화력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 비교를 한 셈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세계 6위의 군사력과 10위의 무역대국인 한국과 아프간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험담"이라고 일축했다.
다만 미중 간 첨예한 갈등 속 '줄타기 외교'로 한미동맹 회의론을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보 부처의 한 당국자는 "군사동맹의 골간은 연합훈련"이라며 "최근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둘러싼 논란에서 동맹 관리의 책임이 있는 외교부와 국방부는 사실상 방관만 했다"고 비판했다. '동맹 관리'를 위한 세심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