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 해군 부사관 사망사건'과 관련해 성폭력 가해자에 이어 최초 신고를 받았던 A 주임상사도 비밀보장 위반 혐의로 입건되자, 성추행·성폭력 사건을 접하게 된 중간 관리자들에 대한 교육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해군 설명을 종합하자면, A 상사는 피해자로부터 성추행 사실을 최초 보고받았지만, 정식 신고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에 별다른 조치 없이 가해자에게 '주의'를 줬다. 이에 대해 A 상사는 별달리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억울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성추행, 성폭력 사건에서 A 상사의 행동은 금기사항에 속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A 상사가 저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했는지는 여가부가 각 공공기관으로 내려보내는 성희롱·성폭력 처리 매뉴얼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 성폭력 판단 기준 등과 함께 피해 사실 인지 후 대응 방식이 기관장, 관리자, 동료 등 역할에 따라 정리돼 있다.
우선 주임상사와 같은 '상위관리자'가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고충상담원에게 연계'다. 그 이전에 신고 사실은 가해자는 물론 제3자 등 그 어느 누구에게도 누설해서는 안 된다. 자의적으로 아마 이런 거 아니겠냐고 판단하거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불쑥 끼어들어 사적 조언이나 충고를 하는 것도 금물이다.
보통 관리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가해자에게 주의를 준답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피해자나 사건에 관해 의도치 않게 정보를 주는 경우가 있다고 매뉴얼은 분명히 경고해뒀다. 상위관리자가 할 일은 그저 피해 상황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기관 내 고충처리절차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 딱 거기까지다.
피해자가 '정식 신고는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A 상사가 '고충상담원 연결도 거부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면, 그 또한 A 상사의 자의적 해석일 뿐이다. 고충상담원을 만나는 것과 '정식 신고'는 다른 개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고충상담원을 통하더라도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 등 얼마든지 비공식 중재 및 합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매뉴얼은 분명히 명시해뒀다.
이번 사건은 비밀 유지가 피해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하는 성인지 감수성 부족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이 2015년 말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2차 피해 관련 연구용역보고서를 봐도 이는 확연하다. 이 보고서는 민간기업, 공공기관 등 근로자 450명을 대상으로 2차 피해에 대한 심각성 수준(5점 만점)에 대해 설문 조사를 했는데, '비밀 보장 소홀(또는 신상 공개)'이 3.36점으로 '가해자로부터 고소나 협박(3.32점), 해고 등 고용상 불이익(3.14점), 문제유발자나 왕따로 낙인(3.12점)보다 훨씬 더 큰 공포였다.
매뉴얼을 구성원에게 제대로 흡수시키는 건 교육뿐이다. 여가부 매뉴얼을 바탕으로 각 기관은 자체적 교육을 진행하고 교육실적을 여가부에 보고한다. 하지만 교육 내용을 일일이 다 확인할 수는 없다. 여가부도 가장 교육이 시급한 대상을 추리다보니 기관장 등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일선 중간 관리자에 대한 교육부터 더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관계자는 "고충처리도 강제할 수는 없기에 '철저한 비밀 보호 아래, 당신이 바라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최소한 알려는 줘야 하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가해자를 불러 혼내는 건 그냥 바로 사건을 누설한 것과 다르지 않다"며 "고충상담원보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부서장, 관리자에게 털어놓는 피해자가 대다수라 그들을 위한 철저한 교육 없이는 이런 문제가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