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최근 인도네시아를 흔들었다. 지난달 27일 국가정보국(DNI)을 방문한 자리에서 해수면이 7.6㎝ 상승하면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집을 떠나야 할 것이라면서 북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를 언급한 것이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린 일종의 경고다.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은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고, 학자들은 저마다 침몰 시점이 10년 뒤인지, 30년 뒤인지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사람들은 설왕설래했다. 수면 아래 있던 해묵은 자카르타 침몰 이슈가 다른 나라 대통령 때문에 부상한 셈이다.
실제 자카르타는 세상에서 가장 빨리 침몰하는 도시 중 하나(세계경제포럼)다. 13개 강이 교차하는 늪지대 해안에 위치한 자카르타는 도시 일부가 이미 60㎝가량 가라앉았다. 상수도 보급률이 60%에 불과해 곳곳에서 지하수 개발이 계속되면 120㎝ 넘게 내려앉을 것으로 보인다. 우기엔 고질적인 홍수에 시달린다.
특히 바다에 접한 북부 자카르타는 최근 10년간 2.5m 넘게 가라앉아 해수면 아래에 있다. 지금도 매년 최대 25㎝씩 낮아지고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까지 겹쳤다. 북부 자카르타에서도 지반 침하가 가장 빠르고 심각한 플루이트(Pluit) 지역을 직접 찾아갔다.
마을은 한눈에 봐도 움푹 꺼져 있었다. 집들로부터 6m 정도 떨어진 바다는 기다란 제방 아래 넘실댔다. 해수면은 마을이 들어선 땅보다 족히 2m는 높아 보였다. 제방이 없다면 마을은 벌써 바다의 일부가 됐을 것이다. 마을 앞에도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높이 2m 남짓 둑이 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공사한 흔적이 퇴적층처럼 선명하다.
29년째 플루이트에 살고 있다는 얀티(44)씨는 "해수면은 높아지고 지반은 낮아져서 세 차례의 큰 공사 이후에도 여러 번 둑을 높였고, 지금도 벽을 계속 쌓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거대한 밀물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고, 이후에도 바닷물이 밀려오면 종종 침수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을 뒤편 저수지는 또 다른 위협이다. 축구장 면적 112배인 80만㎡의 플루이트 저수지엔 도심의 온갖 하수와 쓰레기가 모인다. 드넓은 저수지에는 청소 선박 여러 대가 쓰레기를 수거해 강변에 쌓고 있었다. 물이 잘 빠지게 하려는 조치지만 해수면보다 위치가 낮은 탓에 자력으로는 물이 바다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만든 게 펌프장이다. 펌프장이 고장 나면 마을은 또 속절없이 물에 잠긴다.
구멍가게 주인 푸르노모(50)씨는 "2007년에는 우리 가게 지붕까지 잠겼고, 2010년에도 큰 홍수가 났다"며 "펌프장이 완공된 2014년 이후엔 뜸하지만 자카르타 전역에 폭우가 쏟아지거나 펌프장이 고장 나면 어김없이 마을이 침수된다"고 했다. 그는 "20년째 살고 있는데 지반이 적어도 1m 이상은 내려앉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을에는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았다. 지하수를 파서 식수를 구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바닷물이 침투해 우물을 파도 짜서 마실 수 없다는 것이다. 인드리(22)씨는 "매달 물값으로 (한 달 벌이 4분의 1인) 90만 루피아(약 7만3,000원)를 쓴다"고 설명했다. 마을 앞에선 바닷물이, 뒤에선 민물이 삶을 위협하지만 정작 마실 물은 없는 역설에 빠진 것이다.
그럼에도 돈이 없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북부 해안 지역 거주민은 1990년 이후 35%나 증가했다. 이들이 해수면보다 낮은 땅에 건물을 짓거나 지하수를 파면서 땅이 더 내려앉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도 마을 끝자락에 새 건물을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플루이트의 지반 침하는 2014년 조사 당시 연간 14㎝에서 현재 25㎝로 악화했다.
먼저 지목되는 자카르타의 침몰 가속화 원인은 지반 침하다. 지반 침하는 지질 인자와 지반 인자로 구별된다. 지질 인자는 구조 지진이다. 자카르타는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위치해 있다. 지반 인자는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다. 인구 밀집, 무분별한 지하수 채취와 과도한 개발에 따른 건물 하중, 강변 녹지 훼손, 강의 흐름을 방해하는 쓰레기 등이 거론된다.
자카르타 인구는 최근 30년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건물도 그만큼 늘었다. 상수도 보급률이 낮고 수질을 담보할 수 없는 데다 물값이 비싸 여전히 지하수를 식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자카르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칠리웅(Ciliwung)강은 쓰레기로 오염된 지 오래다. 강변의 숲을 베어 낸 자리가 주택가로 변하면서 상습 범람과 갑작스러운 홍수가 발생한다. 지반 침하는 건물 균열, 바닷물 유입, 배수시설 오작동, 강 흐름 방해 등 2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침몰의 두 번째 원인은 해수면 상승을 유발하는 기후 변화다. 인도네시아 학술원(LIPI)은 2050년 자카르타 해수면이 25㎝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자카르타 같은 해안 도시가 해수면 상승과 잦은 홍수의 위험에 빠졌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기에 집중되는 자카르타 홍수는 해가 갈수록 피해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남부 자카르타 토박이 알피 라흐미(23)씨는 "저지대라 종종 발생하는 홍수가 점점 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 침몰 시기는 분분하다. 대체로 현지 학자들은 2050년에, 해외 연구기관은 2030년에 바닷물이 도시 중심부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비영리 민간 기후 변화 연구기구인 '클라이메이트 센트럴(Climate Central)'은 '2030년 자카르타 침몰 예측 지도'를 만들었다. 북부 전체와 서부, 중부 일부가 해수면보다 낮아진 것으로 표시돼 있다. 예컨대 독립기념탑이 있는 모나스(Monas)광장,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들, 분다란 하이(인도네시아호텔 로터리)도 바닷물에 잠긴다. 이 경우 경제적 손실은 2,000억 달러(약 234조 원)로 추산된다. 실직과 이주로 인한 손실은 포함되지 않았다.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침몰의 두 가지 원인에 맞서 세 가지 거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한국이 관여돼 있다. 지하수 채취로 인한 지반 침하를 막기 위한 자카르타 일대 상수도 공급 사업은 한국수자원공사(K-water) 컨소시엄이 올해 1월 공사를 따냈다. 2025년 상업 운영에 들어가면 200만 명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하게 된다.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수도통합해안개발사업(NCICD) 컨설팅에는 한국농어촌공사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정부는 현재 북쪽 해안에 46㎞에 달하는 제방을 쌓고 있다. 지난해까지 13㎞ 구간이 건설됐다. 인도네시아 국장(國章) 속 가루다 모양의 해상 장벽 건설도 들어 있다. 다만 "제방이 없다면 2050년 북부 자카르타는 완전히 침몰될 것"이라는 찬성 여론과 "또 다른 환경 파괴와 재난을 야기하고 강의 흐름을 막아 오히려 침몰을 가속화하는 가짜 해결책"이라는 반대론이 맞서고 있어 사업 진척이 더디다.
칼리만탄(보르네오)섬으로 수도 이전도 추진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답보 상태지만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이전 의지는 여전히 강하다. 다른 나라들이 외면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작년 2월부터 전문가 3명을 파견해 지식 공유, 한국식 성공 모델 전파, 민관협력사업(PPP) 제안 등을 수행하고 있다. 현지 진출 한국 기업들과 관계 기관이 팀 코리아도 꾸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