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은 중국이 바라던 상황은 아니다. 섣불리 개입했다간 미국 대신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국경을 접한 이웃의 극심한 혼란을 모른 체하기도 곤란하다. 중국이 ‘난감한’ 처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성급히 발을 뺀 미국의 무능과 오만을 공격할 호재임에 틀림없다. 이에 중국은 일단 바이든 정부의 정세 오판을 물고 늘어지며 동맹의 틈을 파고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에 개입한 지난 20년간 최소 740억 달러(약 86조5,000억 원)를 아프간 정부군에 퍼부은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미군 철수 방침에 탈레반이 밀어붙이자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각종 첨단 군사장비가 구식 AK-47 소총에 무너진 셈이다. “서구의 치욕(토비아스 엘우드 영국 하원 국방위원장)”이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국 매체와 전문가들은 온갖 자극적인 표현으로 미국의 실패를 부각시켰다. 환구시보는 16일 “미군은 베트남전 패배 당시보다 더 무력한 종이 호랑이와 같다”며 “1980년대 옛소련의 아프간 철수 때보다 훨씬 굴욕적”이라고 조롱했다. 미국의 대중 봉쇄 구호인 ‘동맹의 가치’가 허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왕진 중국 시베이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은 정작 보호가 필요한 순간에 항상 곁에 없다”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 또다시 입증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에 앞서 영국(1919년), 옛소련(1989년) 등 열강들이 아프간에서 쓴맛을 보고 물러났다. 그래서 ‘제국의 무덤’으로 불린다. “이제 중국의 차례”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하지만 중국은 “전례를 밟지 않겠다”며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다.
아프간 전문가인 주융뱌오 란저우대 정치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엉망진창인 아프간의 상황이 주변국과 중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서구가 중국에 덫을 놓으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첸펑 칭화대 국가전략연구소 교수도 “수렁에 빠진 미국은 이제 중국도 그곳에 갇히길 바라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중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내세워 아프간 정세와 거리를 두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톈진에서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만나 “중국은 아프간의 최대 이웃으로 주권독립과 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하며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자리에서 바라다르는 “탈레반은 어떤 세력도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탈레반이 같은 이슬람 수니파인 신장 위구르족과 결탁하는 건 중국엔 최악의 시나리오다. 과거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 아프간을 근거지 삼아 중국과 맞서면서 신장지역 분리독립 세력의 테러가 격화된 전례가 있다.
이에 중국은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아프간 주변국을 단속하고 국경의 방비를 강화한 상태다. 환구시보는 중국과 아프간을 잇는 와칸 회랑을 거론하며 “인민해방군이 겹겹이 지키고 있어 분리주의자, 극단주의자, 테러단체들이 중국을 넘볼 수 없다”고 자신했다. 왕이 부장은 지난달 12~16일 아프간 인접 3개국을 순방하며 사전 정지작업을 마쳤다. 판광 상하이 사회과학원 대테러ㆍ아프간 연구 선임전문가는 “중국은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등 다른 국가들과 국경 통제를 강화하는 대테러 협력에 나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