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지역 30년 누비며 1,100만 명 치료한 이탈리아 의사 별세

입력
2021.08.15 16:00
19면
33년 전 적십자 합류해 첫 의료봉사 시작
1,100만 명 넘게 치료한 "인류애의 거장"
아프간·이라크 등에 세운 병원만 60여 개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분쟁지역에서 30년 넘게 다친 사람을 치료해온 이탈리아 외과의사 지노 스트라다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이탈리아 ANSA통신은 13일(현지시간) 스트라다가 프랑스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부고를 알렸으며,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심장 수술을 수련한 스트라다는 1988년부터 적십자에 합류해 의료 봉사의 길을 걸었다. 위험한 지역도 마다하지 않고, 전쟁으로 다친 사람을 무상으로 치료해 ‘인류애의 거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1994년 아내와 함께 국제의료단체 ‘이머전시’를 설립한 뒤부터다. 당시 내전과 학살로 고통받던 르완다를 시작으로 이라크, 예멘, 아프간 등 총 19개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머전시가 이때까지 분쟁 지역에 세운 병원만 60개 이상이고, 치료한 사람들은 1,100만 명이 넘는다.

현장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만큼 생전 반전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 가능성이 큰 대인지뢰 반대 운동에 집중했다. 1997년 이탈리아 정부가 대인지뢰 생산·사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등의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2000년 이후에는 미국의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스트라다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추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성명을 내고 “스트라다는 직업의식과 용기, 인간애를 바탕으로 가장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일생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머전시 역시 “그는 설립자이자 우리의 영혼이었다”며 스트라다의 죽음을 애도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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