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비극, 남의 일일까요

입력
2021.08.15 13:40
소말리아 내전 다룬 ‘블랙 호크 다운’

편집자주

주말 짬내서 영화 한 편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왕이면 세상사를 좀 더 넓은 눈으로 보게 해주거나 사회 흐름을 콕 집어주는 영화 말이에요. ‘라제기의 영화로운’은 의미 있는 영화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합니다.


“같이 살 방법이 있는데...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영화 ‘모가디슈’(2021) 속 한신성(김윤석)의 대사

한국 영화 ‘모가디슈’가 화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대박’이라 수식할 만한 관객 동원은 못하고 있어도 2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습니다. 올해 한국 영화로서는 압도적인 성과입니다. ‘모가디슈’ 이전까지 가장 흥행 성적이 좋았던 한국 영화는 ‘발신제한’으로 95만 명이 봤습니다.

‘모가디슈’는 1991년 무정부 상태에 놓인 소말리아에서 남북한 외교관이 합심해 탈출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영화는 22년 독재자 시아드 바레(1919~1995) 소말리아 대통령이 축출될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치안 질서는 무너지고, 외교관조차 신변 보호를 받을 수 없었던 상황을 묘사합니다. 소말리아는 이후 군벌들끼리 다투다 부족 간 내전을 벌이는 아수라장이 됐고, 내전의 불씨는 아직까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극심한 혼란이 지속되자 해적까지 생겨났고, 국제물류운송을 방해하는 골칫거리로 부상했습니다. 2011년 한국 국적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되자 청해부대가 신속히 아덴만으로 출동해 교전 끝에 선박과 선원 전원을 구출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①동부 아프리카 국가의 비극

한국과 인연이 아예 없다 할 수 없지만, 소말리아는 우리에게 멀고도 먼 나라입니다. 내전 발발 전에도 교류가 그다지 있지 않았던 데다가, 내전으로 여행금지 국가가 됐으니까요. 내전의 참상만 뉴스를 통해 간혹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할리우드 영화 ‘블랙 호크 다운’(2001)은 소말리아의 비극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1993년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만들어진 지 20년이 된 영화이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처럼 생생합니다. ‘모가디슈’를 보시고 소말리아 내전이 더 궁금하시거나, 우리가 지나쳐 온 아프리카 국가의 참상을 알고 싶다면 안성맞춤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소말리아라는 공간과 1990년대 초반이라는 시간을 넘어 전쟁의 보편적 비극을 가슴 아프게 전하는 수작입니다. ‘모가디슈’의 류승완 감독이 무척 좋아하는 영화라고 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류승완 감독 '블랙 호크 다운' 팬... '모가디슈' CG 최소화"). ‘에이리언’(1979)과 ‘블레이드 러너’(1982) 등을 연출하고 ‘글래디에이터’(2000)로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명장 리들리 스콧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블랙 호크 다운’ 바로 보기

왓챠에서 ‘블랙 호크 다운’ 바로 보기

웨이브에서 '블랙 호크 다운' 바로 보기

②오판했던 미 특수부대의 작전 실패

바레 대통령이 쫓겨난 후 소말리아는 3대 군벌이 맞붙는 전장으로 변모합니다. “살인을 하면 낙타 100마리로 배상해야” 할 정도로 살상에 대해 엄격히 제재했던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육이 이어집니다.

아이디드가 이끄는 군벌이 가장 세력이 컸고,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내전이 일어나자마자 대기근이 몰아닥칩니다. 92년에만 30만 명이 굶어 죽습니다. 국제기구와 구호기관 등을 통해 원조 식량이 들어와도 아사자는 속출합니다. 아이디드파가 식량이 들어오는 대로 가져가 무기처럼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는 분노합니다. 미국은 해병대 2만 명을 투입해 식량이 원활하게 배급할 수 있도록 조치한 후 철수시킵니다.

아이디드는 93년 미 해병대가 빠져나가자 다시 원조 식량을 차지하려 합니다. 유엔평화유지군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미군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아이디드 제거만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델타포스 등 특수부대를 파견해 작전에 돌입합니다. ‘블랙 호크 다운’은 이 특수부대의 활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블랙 호크는 미군의 다목적 헬리콥터입니다. 주로 수송이나 구급을 위해 활용되는 대형 헬리콥터입니다. ‘다운(Down)’은 추락을 의미합니다. 미군 헬리콥터가 추락했다는 의미니까 아이디드를 제거하려는 특수작전은 실패에 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전을 지휘한 게리슨 장군(샘 셰퍼드)은 자신만만했습니다. 소말리아 군벌은 정식 군대가 아닌 민병대를 보유하고 있어 전투력이 떨어지고, 무장 상태도 시원치 않았으니까요. 부대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작전에 투여된다는 점에 긴장하면서도 야간투시경을 두고 가거나 방탄복에서 철판을 빼기도 합니다. 오합지졸을 상대로 몇 시간 만에 작전을 완수하고 복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입니다.

③미국이 개입 꺼렸던 소말리아

게리슨 장군은 작전에 경헬리콥터와 블랙 호크, 험비만 동원합니다. 중무장 헬리콥터까지 동원하면 적이 낌새를 챌 수 있다는 계산에서입니다. 하지만 오판이었습니다. 아이디드파는 부대 근처에 감시조를 배치하고 이상한 움직임이 있는지 감지했습니다. 적지 않은 수의 헬리콥터가 출동한다는 점을 알자 즉각 방어에 나섭니다. 미군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고, 생각지도 못할 만큼의 사상자를 내게 됩니다. 카메라는 지휘관의 오판 속에 사지에서 전우를 지키면서 작전을 완수하려는 미군의 악전고투와 희생정신, 책임감에 초점을 맞춥니다.

미국에게 있어 소말리아는 국익이 걸린 나라는 아닙니다. 소말리아에 군대를 파견해 내전의 부조리한 상황을 교정하려 한 건 미국 국민들 마음 때문입니다. 소말리아에서 수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뼈와 가죽만 남긴 채 죽어가는 모습이 뉴스전문채널 CNN을 통해 미국 안방에 전해졌습니다. 미국인의 마음은 요동쳤고, 미국 정부는 세계의 경찰 국가라는 체면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한때 저널리즘에서 종종 언급됐던 ‘CNN 효과’가 위력을 발휘했던 겁니다.

미군이 아이디드 제거 작전에 실패한 2주 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소말리아로부터 특수부대를 철수시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CNN이 또 큰 역할을 합니다. 소말리아인들이 추락한 블랙 호크의 조종사 시체를 거리에서 끌고 다니는 모습이 이 매체의 전파를 타면서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이익과 큰 관련이 없는 아프리카 나라에서 애먼 미군이 전사하고 험한 꼴까지 당해서야 되느냐는 여론이 형성됐던 겁니다. 미국은 94년 나머지 군대까지 완전히 철수시킵니다.

④전쟁만 없었으면 최고 휴양지였을 곳

‘블랙 호크 다운’은 모래바람 속에서 염을 하는 사람을 비추며 시작합니다. 내전과 대기근으로 신음하던 소말리아의 당시 모습을 짧고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영화 속 모가디슈 시내 곳곳에는 불에 탄 차들이 널려 있고, 건물들에는 총탄 자국이 예사로 있습니다.

독재 정권이나 내전만 없었으면 소말리아는 살기 좋은 곳이었을 겁니다. 영화 초반부에 미군 헬리콥터가 해안가를 비행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세계 어느 곳 못지않은 풍광입니다. 미군 분대장 맷(조쉬 하트넷)은 “아름다운 해변, 아름다운 태양, 최고의 휴양지가 될 수 있었는데”라고 탄식합니다. 부족 간 갈등과 이를 악용하려는 군벌들의 정치적 계산이 겹치면서 소말리아는 형극의 땅으로 변질됐습니다.

영화 속에서 미군은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아이디드의 부관을 체포합니다. 경호원까지 대동하고 고급 자동차를 차고 다니는 그는 미군이 군벌의 비인도적 행위를 지적하자 못마땅한 듯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두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요. 당신네들의 간섭이 없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죠… 이건 혁명이요. 우리의 전쟁이오.” 국민들은 죽어 나가지만 자신은 쿠바산 시가를 피워대면서 누구를 위한 혁명이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플라톤의 경구인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로 시작합니다. 승자도, 패자도, 살아남은 자도 전쟁의 참혹함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모가디슈’는 소말리아의 비극을 빌려 남북한 관계를 되짚고, 한반도의 역사를 반추합니다. ‘모가디슈’와 ‘블랙 호크 다운’을 보고 나면 이 땅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걸 새삼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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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