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허드슨강에 3000억원짜리 132송이 ‘콘크리트 튤립’이 떠올랐다

입력
2021.08.14 10:00
5월 개장한 뉴욕의 수상공원 '리틀 아일랜드'
미디어재벌 배리 딜러 부부가 2.6억달러 쾌척
한달여 간 50만명이 찾는 '뉴욕의 명소'로 각광
"갑부의 선물?" 민간기부로 공공장소 조성 논란도

편집자주

떠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여행이 있습니다. 세계 건축을 통해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살펴봅니다.



“공원은 사람들의 질병을 낫게 해 주진 않지만, 삶을 개선해 줄 겁니다.”

미국의 미디어 재벌 배리 딜러(79)는 지난달 말 미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왜 공원을 짓는 데 거액을 기부했나’라는 질문을 받자 이같이 답했다. 딜러와 그의 아내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75) 부부가 2억6,000만 달러(약 3,000억 원)를 기부해 만든 공원 ‘리틀 아일랜드’가 논란 끝에 올해 5월 뉴욕 맨해튼에서 개장했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시간별 예약제를 통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다.



100년 넘은 부두, 공원으로 바뀌다

‘리틀 아일랜드’는 맨해튼 서쪽 허드슨강 위에 9,700㎡(약 3,000평) 규모로 조성된 수상 공원이다. 튤립을 닮은 132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물 위로 공원을 떠받치고 있다. 공원 내에는 산책길과 잔디 언덕, 계단 등이 요동친다. 최대 3,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과 공연장도 곳곳에 배치됐다. 공원은 개장과 동시에 가장 각광 받는 ‘뉴욕의 명소’가 됐다. 개장 후 한 달여간 50만 명이 다녀갔다.

공원은 1900년대에 지어진 부두 ‘피어54’의 도시 재생 일환으로 추진됐다. ‘피어54’는 1970년대까지 부두로 사용됐으나 이후엔 도시 유휴공간으로 방치돼 있었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의 여파로 이 일대가 피해를 입으면서, 복구를 위한 프로젝트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9년 오래된 고가 철도를 공원으로 바꾼 뉴욕의 ‘하이 라인 파크’ 개발에도 개인 기부자 최고 금액인 3,500만 달러(약 407억 원)를 냈던 딜러 부부가 이번에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충분한 재원에 최고의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뉴욕의 또 다른 명소인 ‘베슬’을 설계한 영국의 유명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51), 링컨센터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의 조경을 담당했던 MNLA의 시그니 닐슨(70)이 합류했다. 헤더윅은 영국 건축잡지 ‘디진’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부두에 갔을 때 판자가 사라진 채 물에 박힌 나무 말뚝만 남은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기둥을 만들었다”고 했다. 수백 개의 오래된 말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닐슨은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을 상상하며 식물을 심었다. 두 사람은 “복잡한 맨해튼을 뒤로 하고 환상적인 섬으로 여행을 온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강 생태계 파괴, 자연재해 피해 우려에 반발도

공원은 완공까지 총 8년이 걸렸다. 100년이 넘은 부두를 공원으로 재생시킨다는 소식에 지역 개발업자와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의 극심한 반대가 이어졌다. 지역 개발업자들은 공원 대신 상업 시설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시민단체는 공유지가 재벌의 사유지가 되어선 안 된다고 반발했다. 환경단체는 허드슨강 생태계 파괴를 우려했다. 2년여의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정기적으로 강의 생태계를 보호하고, 공공 공간을 확보하되 수익성을 쫓지 않겠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추가된 끝에 공사가 시작됐다.

허리케인과 해일 등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 우려도 나왔다. 헤더윅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기둥의 높이를 4m가량 더 끌어올렸다. 염수에 부식되지 않는 고강도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풍속과 조도 등을 정밀하게 계산해 기둥의 높낮이도 조정했다. 설치 위치에 따라 최소 4.5m에서 최대 18m에 달한다. 헤더윅은 “환경 요소들을 고려해 기둥의 높낮이를 조정한 결과, 기복이 심한 공원 지형이 완성됐다”며 “이는 평지보다 오히려 풍부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억만장자의 선물’ vs ‘시민의 쉼터’ 논란 가열

개장 후에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뉴욕의 에덴공원’ ‘뉴욕의 환상적인 섬’ 등 쏟아지는 찬사에도 거액의 민간 자본으로 공공 공간을 조성하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뉴욕타임스는 “리틀 아일랜드가 뉴욕의 큰 자산임은 분명하지만 민간에 의지해 국가와 도시의 주요 시설을 운영하는 건 이상적이지 않다”라며 “‘억만장자의 선물’ 같은 장소보다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학자 힐러리 안젤로는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시간과 자원이 투입된 ‘리틀 아일랜드’는 사용자 및 용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공익이라는 보편적 선을 제공한 유익한 투자로 비친다”고 평가했다. 초호화 공원을 만드는 것만이 공공선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의 말을 인용한 블룸버그통신은 도보로 10분 거리 내 공공 공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뉴욕 시민이 여전히 7만5,000명에 달하며, 특히 유색 인종 거주 비중이 높은 지역은 백인 거주 지역보다 공공 공간이 33.5%나 부족하다고 전했다.

반면 건축계에서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다른 대표적 공공 공간들도 민간 자본에 기대어 지어졌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헤더윅은 “민간 기부로 만든 공공 장소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있지만, 좋은 공간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효과는 크다”며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예산이 부족한 정부에 비해 민간 기부는 공원의 안정적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딜러 부부는 향후 20년간 공원 관리 및 운영을 위해 1억3,000만 달러(약 1,500억 원)를 더 기부할 예정이다.

강지원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