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로봇이 가져온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입력
2021.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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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기술 패권경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불거질 갈등의 하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문제다. 미국은 ‘민주’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동맹을 구축하여 탈중국 내지 중국에 대한 의존도 줄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중국에 대한 생산 의존도가 심해 미국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평가다.

그런데 미국의 가치동맹 구축은 그 참여 여부를 두고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비단 중국과의 긴밀한 생산연계뿐만 아니라 15억 인구의 소비시장으로서 중국의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러한 우리의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안보를 놓고는 당연히 한국이 미국 주도 동맹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문제에 대한 대처를 위해 미중 대결과 양자택일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글로벌 공급망 자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향후 글로벌 공급망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냉철히 전망해 보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맞추어 간다는 관점에서 우리의 입장을 정해야 하는 것이다. 미중 누구라도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결정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사실 글로벌 공급망은 미중 갈등이나 코로나19 발생과 관계없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구조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변화의 중심에 급격한 기술 발전과 지식중심 경제로의 전환이 있다. 전자의 좋은 예는 운동화를 꿰매는 바느질 로봇이다. 바느질 로봇은 운동화를 만드는 숙련노동자 십수 명을 대체하였다. 지금까지 저임금의 유리성을 기반으로 발전해 온 글로벌 공급망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섬유나 의류, 장난감,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나 공장이 저임금 개도국에 위치한다는 상식도 허물어지고 있다. 저임금을 찾아 계속 해외로 떠도느니 자국이나 혹은 자국 근처에서 로봇을 이용해 자동화하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3D 프린터 등이 실생활에 적용되면 저임금이 갖는 이점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대신 비즈니스를 위한 기초 인프라나 숙련된 전문 노동력과 첨단기술의 도입이 편리한 곳에서 생산과 제조가 일어날 것이다.

후자는 전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식중심의 경제에서는 노동보단 무형의 가치가 중요해진다. 실제 글로벌 기업의 전체 수익에서 R&D나 브랜드, 소프트웨어 그리고 지재권 등에서 비롯되는 수익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이 병행되면 그동안 제약이었던 물리적 거리마저 허물어지고, 국경 간 장벽도 없어진다. 결국 지금까지의 글로벌 공급망이 저임금 위주로 발전했다면 앞으로의 글로벌 공급망은 고부가가치 기술과 지식중심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 따른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정에서 고부가가치 기술과 지식을 보유한 국가나 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급망 체제에 편승해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 미국이냐 또는 중국이냐가 아니라 과연 어느 나라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지식을 존중해 주고 더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 우리 입장을 정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건전한 상식과 투명한 제도 및 규범까지 있다면 가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