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제3 노조에 거는 기대

입력
2021.08.13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좀 엉뚱해 보이지만, 교역을 관장하는 세계무역기구(WTO)는 회원가입 자격과 유지 조건으로 각국에 노동 관련 조항을 내건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노동권 강화를 요구하는 것과 닿아 있는 대목이다. 양측은 양허 품목, 대상 품목 세율을 놓고 협상을 벌이지만, 노동기본권을 놓고도 신경전을 펼친다.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성별 등에 따른 고용차별 금지, 결사 자유 보장 등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을 내세워 선진국이 후진국을 압박하는 형태다. 노동권과 무역조건을 연계한 ‘밀당’, 이른바 블루라운드로 불리는 무역 협상이다.

블루라운드는 1990년대 초 시작됐다. 공산권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과 베트남이 개혁 개방을 시작하면서 전 세계 무역 질서에 태풍을 일으킬 때다. 싸고 풍부한 노동력으로 무장한 중국과 소련 등이 WTO 체제에 들어오면서 기존 회원국이 인건비 하방 압력을 받은 것은 필연. 글로벌 기업 공장들이 한국 대신 중국으로 넘어가고, 중국 공산품이 세계를 뒤덮는 상황의 타개책으로 노동 문제 간섭이 시작된 것이다. ILO가 나서야 하는 사안이지만, ILO에 핵심협약을 강제할 힘이 없었던 탓에 무역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다.

여기에 오른 ILO 협약은 각국에 노동기본권 강화 압력으로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이 ILO 협약을 바탕으로 사회공헌 선언문을 썼고, 한국도 유럽연합(EU)과 FTA 체결 당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조항을 끼워 넣고서야 협정에 서명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 노동자들이 누리는 많은 권리는 내부의 노동운동으로 쟁취한 것들이지만, 이처럼 바깥의 도움도 있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노력으로 이 땅의 근로 환경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지금 국내 노동자, 근로자들이 일터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복수 노조 틀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직접 풀기 위해 새로 생기는 노조가 방증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양분된 서울교통공사에 제3 노조가 등장했다. 20, 30대의 이곳 직원 500명가량이 11일 고용노동부에 노조 설립 신고서를 냈다. 서울교통공사 올(All)바른노동조합.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기성 노조의 노동운동 방향이 ‘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다. 젊은 직원의 권익은 도외시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대중교통 서비스와는 큰 상관이 없는 안보, 정치 이슈에 천착하는 기성 노조에 염증을 느꼈다는 게 노조 설립 이유다.

공정과 탈정치를 기치로 내건 이들의 도전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올해 초 LG전자를 시작으로 현대차, 금호타이어 등 기득권 노조에 실망한 이들이 제3 노조를 설립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할지언정 본업에 충실한 노조, 그를 통해 더 많은 직원이 편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MZ세대의 도전은 계속되길 소망한다. 행복하지 않은 근로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고객을 만족시킬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없다. 노동권과 무역을 엮은 블루라운드도 어쩌면 행복하지 않은 노동자가 만든 물품을 거부하기 위한 전략이었는지 모른다.

정민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