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선수 인터뷰

입력
2021.08.10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볼더링을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그게 너무 아쉽고…그래도 리드까지는 힘 다 쓰고 와서 후회는 없어요…원래는 그냥 결승만 가서 결승에서는 즐기고 오자는 생각이었는데…막상 그래도 이렇게 되니까 욕심도 조금 났었고 했는데." 도쿄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결승까지 올라 메달을 놓친 서채현 선수는 복받치는 감정 때문에 경기 후 인터뷰 내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안타까운 모습의 이면에 긴장과 아쉬움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 세계 대회에서 선수들의 긴장은 불가피하지만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해방돼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5월 테니스 프랑스 오픈에 참가했던 일본의 오사카 나오미 선수는 1회전 승리 후 인터뷰를 거부해 구설에 올랐다. 의심하는 듯한 기자들의 반복되는 질문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며 "특히 경기에 졌을 때 인터뷰는 쓰러진 사람을 발로 차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조직위가 벌금 처분을 내리자 오사카는 아예 대회를 기권해 버렸다.

□ 미국 대표 수영선수 시몬 매뉴얼은 도쿄올림픽 기간 중 트위터에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직후 이를 받아들일 시간을 갖기도 전에 선수를 인터뷰하는 걸 제발 중단해 달라"고 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딴 매뉴얼은 도쿄올림픽 50m 자유형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한 뒤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는 "선수들은 모든 걸 쏟아부었고 그때 사람들이 더 알아야 할 건 없다"며 "우리를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봐 달라"고 했다.

□ 경기 후 인터뷰는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더 거창하게 만드는 요소의 하나일 수 있다. 승리와 실패가 선수 본인 입으로 해명되면서 경기의 서사는 충실해진다. 대회를 끌고 가는 조직위도, 광고 효과를 노리고 막대한 돈을 투자한 스폰서도, 무엇보다 그것을 존재 이유로 삼는 언론도 이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조직과 힘의 논리 때문에 정작 경기 주체인 선수의 사정은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선수를 뒷전으로 하는 막무가내식 인터뷰는 재고되었으면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