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상, 손잡는 워싱턴 정가

입력
2021.08.05 19:00
25면

편집자주

20여 년 미 연방의회 풀뿌리 활동가의 눈으로 워싱턴 정치 현장을 전합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의 마오쩌둥을 찾았다.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지만 역사적인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한 헨리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의 베이징 잠입은 거의 무협지 수준이었다. 키신저는 파키스탄에 전용기를 세워두고 몰래 빠져나와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취재진의 시선을 완벽하게 따돌리고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와 '닉슨-마오쩌둥' 회담에 합의했다.

사유재산 몰수를 단행한 중국 공산당 혁명은 교육받은 전문가들과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마오쩌둥의 정책들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근으로 이어졌고 끊임없는 정치적 숙청과 홍위병들의 서로를 죽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중국이 키신저의 데탕트외교에 힘입어 1970년대 이후로 서서히 달라졌다. 덩샤오핑에 의해 시행된 개방과 개혁은 이념에 기초한 제도를 넘어 개인의 소유, 대중과의 소통, 결과에 기초한 결정으로 사회의 운용방식을 바꾸어 냈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은 경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세력과 느슨하게 만들려는 세력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국민경제의 진전을 이루어 왔다. 공산주의자들이 중국을 점령했을 당시 국민의 20%만이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으나, 지금은 97%로 확대됐다. 1960년 GDP가 90달러 미만에서 지금 1만 달러를 넘는다. 2028년 이후엔 미국 경제보다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군사력 또한 마찬가지다.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자유주의, 그리고 일당 지배체제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확신했다. 그때부터 미국인들은 자유시장 개혁을 수용한 중국이 미국과 같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여겼다. 다방면에서 교류를 확대하면서 중국의 고르바초프가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해 왔다.

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주석하에서 창당 100년을 기념했다. 마오쩌둥 이후 가장 호전적이고 억압적인 지도자인 시진핑은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면서 "중국을 괴롭히거나 억압하거나 노예화하려는 사람들은 만리장성에 머리를 깨게 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렸다. 누가 봐도 미국용이다. 더구나 이날은 헨리 키신저가 마오쩌둥의 재앙적 통치로 바닥까지 침몰한 중국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을 개혁과 개방의 길로 인도해낸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 미국인들에게 시진핑 주석의 절제되지 않은 호전적인 발언은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조성된 미국 내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주요 신문과 방송의 뉴스 채널에서는 온통 중국 관련 보도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 행사와 군사 퍼레이드 장면은 미국인들을 대중국 전선으로 집결시키기에 충분했다.

2013년 당의 권력을 장악한 시진핑은 소련의 몰락에서 다른 교훈을 얻었다. 제도(공산주의)의 문제가 아니고 그 제도를 운영하는 당 간부들이 부패하고 소신을 잃었기 때문에 소비에트가 해체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첫 번째 공약으로 중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을 향한 시진핑 주석의 공격적 발언은 격렬한 당파적 대립을 하고 있는 워싱턴 정치권을 진정시키는 효력을 발휘한다. 중국에 대응해서 워싱턴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극복하여 초당적으로 협의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 의회는 미국의 대중국 경쟁력을 장·단기적으로 강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2021년 미국 혁신 및 경쟁법'을 초당적으로 통과시켰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당파적 대립과 싸움을 멈추는 워싱턴의 정치권이 시민들에게 안도감을 준다는 뉴스해설자의 설명이 없더라도 중국과의 경쟁은 국민통합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바이든 정부엔 분명히 호재다.



김동석 미국 한인유권자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