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내년엔 만나지 맙시다

입력
2021.08.05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내거나 돈 문제를 일으키고 막말이 주특기였던 이들이 수두룩했다. 화려한 경력 뒤에 어두운 과거를 교묘히 숨겨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옛일뿐 아니라 이들의 미래도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바른 생각을 가졌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지난해 4월 모 지역에 출마한 국회의원 선거 후보들이 딱 이런 사람들이었다. 뻔뻔하게 손바닥으로 허물을 가리고 나선 그들에게 표를 주기 싫었다.

이런 이들이 신입사원이나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응했다면 선택받을 수 있었을까.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이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 있으니 정치판에서 인신공격과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할 때 혀를 차는 사람은 있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이 강물에 빠지면 물이 더러워지기 전에 빨리 꺼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는 그들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지방의회와 지자체는 더 심각하다.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으로 칭송되기는커녕, 난장판이라 부르는 이들이 더 많다. 관광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해외출장 중 가이드를 때려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가 하면, 민의의 전당이란 의회에서 "나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느냐"는 낯 뜨거운 발언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우리 지방의회를 점하고 있다. 강원도의 한 군의원은 술을 먹다 지인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리쳐 동네 망신을 제대로 시켰다.

앞서 5월 최문순 강원지사가 제안한 국제컨벤션센터가 경제성 없다고 안건을 부결시켰던 강원도의회는 불과 한 달 만에 결론을 뒤집어 지방의회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는 식이었다. '팔았던 땅을 2년 뒤 도민 혈세를 들여 5배로 되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다수의 횡포를 넘지 못했다. 이들에게 '거수기'란 별명이 붙은 덴 이유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선 안 되는 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간판이나 유력 정치인과의 줄 하나 잡고 있으면 생존하는 곳이 정치판이다.

이처럼 정화 능력을 상실한 정치판에 젊은 야당 대표가 '공천 자격시험'을 제시하고 나섰다. 얼마나 달라질까 싶지만, 그래도 한번 희망을 걸어보자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수준 낮은 정치인을 직접 경험했다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시험을 통한 단순경쟁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순 없겠으나 검증은 필요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내놓는 게 정당의 의무라면,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겠다는 그 시험을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도 없겠다. 국민 의식수준을 정치권이 따라 오지 못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악을 걸러내는 일에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여야 모두 국민에게 공천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킬 때도 됐다.

참신하고 창의적인 정치 모델을 기대하는 국민의 기대는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있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낙천·낙선 운동이 더 커지길 바라는 국민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함량이 떨어지는 후보들을 걸러낼 네트워크를 촘촘히 엮어 작동시키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지금부터 일찌감치 그들에게 레드카드를 내밀자고 말한다. 다음 선거시즌이 닥치기 전, 그들로부터 우리의 소중한 민생을 지켜낼 방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

박은성 전국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