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도 끝장내는 '분열의 정치'

입력
2021.07.2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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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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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친해도 우정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친구와는 정치·종교 얘기를 하지 말라고들 한다. 얼추 맞는 말 같다. 정치적 성향이 비슷하거나 같은 종교를 믿으면 상관없겠지만, 서로의 지향점이 다르면 아예 입 밖으로 이야기 자체를 꺼내지 않는 게 현명하다. 단순한 의견 교환을 넘어 조금만 깊이 있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심지어 제압하려 들기 십상이니까. 그런데 정치적 신념이든, 종교적 믿음이든, 어디 그리 쉽게 바뀌는 성질의 것이던가.

누군가 물러서지 않는 한,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며 다투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겉으론 “네 생각을 존중한다”면서 말을 맺더라도 마음속엔 앙금이 쌓이고 결국엔 서먹해지기 일쑤다. 우정엔 금이 간다. 문제는 그래서 애써 피하려 해도 피하기 힘든 대화 주제가 바로 정치라는 점이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철만 되면 인터넷 정치 게시판에 ‘(정치적 입장이 다른) 오랜 친구와 연 끊어 버렸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는 이유다.

미국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지난달 미국기업연구소(AEI)가 발표한 한 연구보고서는 꽤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인들의 교우관계 현황 조사인데,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원들이 민주당원들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친구들을 더 많이 갖고 있다”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공화당 지지자의 53%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밝힌 반면,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 “공화당 성향 친구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32%에 그쳤다는 것이다.

처음엔 ‘민주당 지지자들이 더 정치지향적이고, 더 편협하다’는 게 해당 보고서와 기사의 핵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짜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다른 데 있다. 미국 성인의 15%가 정치 문제로 친구와 절교했다고 답했는데, 이들 중 22%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의견 차이’를 그 이유로 꼽았다고 했다. 보고서는 “미국인이 우정을 끝내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트럼프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며 두 사람의 언급을 소개했다. 민주당 지지자는 “트럼프를 숭배하는 미친 사람들과 상대할 수 없다”고 했고, 공화당 지지자는 “우리의 위대한 트럼프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끊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4년간 미국 사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쪼개졌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재임 기간 내내 그는 분열을 조장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은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였다. 대니얼 콕스 AEI 연구원은 “트럼프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나 백신의 효능 등처럼 과거엔 ‘정치적인 것’으로 규정되지 않았던 것들을 당파적 이슈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실 갈등과 대립은 소모적이라기보단, 오히려 발전의 원동력에 가깝다. 다만 ‘열린 소통’과 ‘존중’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과연 우리 현실은 그러한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의 당내 후보 경선에선 네거티브 공세만 판을 친다. 야당 대선주자들은 그저 ‘반(反)문재인’만 외친다. 통합의 리더십이라든가, 미래 비전 제시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극심한 사회 분열만 부추기는 ‘편가르기 정치’는 이제 그만 좀 끝낼 때도 되지 않았는가.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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