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꼽은 '새로운 발리'들은 어디?

입력
2021.08.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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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0대 뉴(New) 발리+1' 사업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자연과 인공의 조화.' 5년 전 미국 40개 주(州), 100여 개 국립공원 등 북미 대륙을 횡단하면서 누린 일관된 느낌이다.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포장 도로, 잘 정돈된 환경, 꼼꼼한 안내와 흥미를 유발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대자연과 역사 현장을 돋보이게 한다. 요즘 같으면 논란이 됐을 관광지 개발을 오래전 끝낸 미국의 여유는 대대적인 자연 보호 구호에 녹아있다.

인도네시아 34개 주 중 16곳을 취재하면서 주변 관광지를 돌아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절경은 비할 바 없지만 뭔가 산만하고 투박하다. 더딘 개발 탓인지, 느슨한 관리 탓인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나마 국제 관광지 면모를 갖춘 곳은 우리에게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보다 친숙한 발리 정도다.

정부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나온 게 '10대 뉴(New) 발리+1' 사업이다. 세상에 자랑할 만하지만 발리만큼 알려지지 않은 관광자원을 최소한 발리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춤하지만 꿈을 접은 건 아니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최우선으로 4곳(토바호수, 보로부두르, 만달리카, 코모도)을 콕 집기도 했다. 다행히 그 4곳은 코로나19 사태 전 직접 다녀왔다. 새로운 발리 10곳을 소개한다. 언젠가 자유롭게 오가리라는 희망을 담아.



'식인 풍습'의 진실 토바호수(Danau Toba)

수마트라섬 북부수마트라주(州)에 위치한 세상에서 가장 큰 화산호수,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호수다. 7만5,000년 전 화산 폭발로 생성됐다. 넓이 1,130㎢에 수심은 최대 900m다. 물결마저 파도처럼 밀려와 넋 놓고 바라보면 바다라는 착각에 빠진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받았다. 주변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긴 시피소피소(sipiso-piso) 폭포(120m)가 있다. 물가에서 노는 아이들과 낚시하는 노인들이 단조로운 풍경을 채운다.

호수 안에는 서울(605.5㎢)보다 넓은 사모시르섬(630㎢)이 있다. 섬의 원주민 바탁토바족이 사형수를 공개 처형한 뒤 시신의 특정 부위를 나눠 먹었다는 풍습이 전한다. 이 사실에 살이 붙어 인육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는 전설도 있다. 약 200년 전(1816년)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식인 풍습은 사라졌다. 이 때문에 인구의 87%인 무슬림이 요직을 장악한 나라에서 기독교 신자가 원주민의 75%를 차지한다. 사모시르섬 시베아베아언덕에 만들고 있는 높이 61m의 '축복하는 그리스도' 조각상은 완공되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예수상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8대 불가사의' 보로부두르 사원(Candi Borobudur)

서기 750년부터 존재한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사원(1만4,165㎡)이다. 불상 500여 개, 종탑 모형(스투파·stupa) 73개 등 200만 개의 돌로 불교의 우주관을 건물 9층 높이(현재 35.3m)로 꾸민 피라미드 형상이다. 4㎞에 이르는 2,672개의 부조(浮彫) 판은 '세상에서 가장 긴 사원 부조'다. 반경 30㎞ 내에 사원 축조에 사용한 돌을 전혀 발견할 수 없어 세계 8대 불가사의라 불린다. 1991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일출 전 입장해야 사원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연기를 내뿜는 므라피(merapi)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원 곳곳에서 명상을 하는 관광객들이 눈길을 끈다. 대낮에 가면 무더위에 지칠 수 있다. 행정구역상 중부자바주 마글랑에 속하지만 욕야카르타(족자)의 유산으로 더 알려져 있다.

족자특별자치주는 프람바난 사원(힌두교)까지 더해 인도네시아 문화의 중심지다. 조코위 대통령 등을 배출한 인도네시아공화국의 첫 국립대 가자마다대가 있는 교육 1번지다. 1945년 8월 일제 패망 뒤 네덜란드연합군과 4년간 치른 독립 전쟁에서 공화국의 임시 수도이자 결사 항쟁의 격전지였던 족자는 인도네시아의 완전한 독립 이후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현재도 술탄이 종신 주지사를 맡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공화국 속 왕국'이다.

'비운의 공주' 전설 만달리카(Mandalika)

발리 바로 동쪽 옆, 제주도 넓이의 2.5배인 롬복섬(4,739㎢) 남쪽에 있다. '때 묻지 않은 발리'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섬 베스트 3'라 불리는 롬복에서도 아직 개발이 덜된 곳이다.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덕에 유명해진 길리군도 부근의 섬 서쪽 호텔 밀집 지역과는 풍경이 다르다. 비취색과 청록색이 어우러진 바다가 넘실댄다. 공항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여정 중에 전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삭(sasak)족 마을도 방문할 수 있다. 섬 북쪽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이자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화산 린자니화산(해발 3,726m)이 있다.

만달리카는 본디 공주의 이름이다. 주변국 왕자들이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하자 만달리카 공주는 직접 신랑을 정하겠다며 스그르(seger)해변에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이어 섬의 평화를 지키겠다며 바다로 몸을 던졌다. 주민들이 샅샅이 뒤졌지만 공주를 찾을 수 없었고 얼마 뒤 형형색색의 동물들이 나타났다. 원주민들은 이를 냘레(nyale·갯지렁이)라 이름 짓고 공주의 화신으로 여겼다. 지금도 매년 2~3월 만달리카 공주의 희생을 기리며 갯지렁이를 잡는 '바우(bau) 냘레' 축제가 열린다.

'죽기 전에 가야 할' 라부안바조(Labuan Bajo)

자카르타에서 직항으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코모도국립공원의 관문 라부안바조는 2022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및 2023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 회담 장소로도 뽑혔다. 화산 폭발로 생성된 코모도(390㎢), 린차(198㎢), 파다르 주요 섬과 26개의 작은 섬을 거느린 코모도국립공원은 멸종위기동물 코모도왕도마뱀이 서식하는 유일한 곳이다. 1980년 국립공원으로, 199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은옥색이 희롱하는 청록 바다, 세상에 일곱 군데밖에 없다는 가슴 황홀한 분홍 모래톱(핑크비치·Pink Beach), 영혼이 흔들리는 황금 별빛을 만끽하고 있으면 '죽기 전 반드시 가야 할 곳'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코모도국립공원의 별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2019년 코모도왕도마뱀 보호를 위해 섬 폐쇄가 검토된 바 있으나 취소됐다.

개발 논란, 지혜롭게 풀어야



이 밖에 △2억 년 된 화강암들로 색다른 백사장 풍경을 선사하는 방카블리퉁제도의 탄중클라양(Tanjung Kelayang) △꽃들이 지천인 초원과 일출이 압권인 '구름 위 낙원' 동부자바주 브로모(Bromo·해발 2,393m)화산 △다양한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반튼주 탄중르숭(Tanjung Lesung) △세계 산호 종류의 90%가 발견돼 2012년 유네스코의 8번째 지구생물권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동남부술라웨시주 와카토비(Wakatobi)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품은 '태평양 끝의 진주' 북부말루쿠주 모로타이섬(Pulau Morotai) △약 110개의 섬으로 이뤄졌지만 '1,000개의 섬'이라 불리는 자카트라 북쪽의 스리부제도(Kepulauan Seribu)가 '10대 뉴 발리'에 포함됐다. 여기에 더해 최근 조코위 대통령은 별칭이 '천국의 조각'인 북부술라웨시주 리쿠팡(Likupang)을 추가했다.



반대에 직면한 곳도 있다. 코모도는 환경단체에 이어 최근 유네스코가 개발을 잠정 중단하라고 요청했고, 만달리카는 주민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어차피 코로나19 사태로 사업 진행이 더딘 만큼 긴 안목으로 '조화와 공존' 틀 안에서 지혜롭게 꾸며가길 기대한다.



토바·보로부두르·만달리카·코모도=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