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논의에 일본의 공간을 열어주자 

입력
2021.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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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위해선
남북개선 외에 한미일 공조도 중요
우리가 일본의 건설적 기여 유도해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2019년 2월 북미 간 하노이 노딜을 계기로 동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발표된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소식은 꽉 막혔던 남북관계를 다시금 풀어나갈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주고 있다. 남북한 정상이 10여 차례 친서를 주고받은 결과로 나온 결실이라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더욱이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남북 대화·관여·협력에 대한 지지’를 공동성명으로 확인받은 바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고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남북한 관계가 가장 중요하지만 한미일의 공조와 협력이라는 국제변수 또한 매우 중요하다. 지난 3년간의 과정을 반추해 보면 일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구축과정에서 소극적인 역할을 담당했거나 방관자적 자세에 머물렀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에 대한 경계와 우려를 표명하고 심지어는 훼방을 놓는 역할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존 볼턴 회고록에서 나오는 아베-트럼프의 대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2018년 이래 약 2년간 한반도 정세를 요동치게 했던 남북 북미 북중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되는 과정에서 일본은 소외되거나 무시되는 상황이 이어져 왔고 이는 ‘재팬 패싱론’으로 일컬어졌다. 일본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접근과 비핵화 협상에 대해 겉으로는 지지를 표명하고 있지만 내심 강한 불신을 지니고 있다. 즉, 북한 체제와 핵 문제에 관해 문재인 정부가 너무 순진한 접근을 하고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문 정부는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 등을 두고 사사건건 대결 자세를 서슴지 않고 북한에는 지나치게 관대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지니고 있다.

한일은 기본적으로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이라는 공통 목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북 접근에 대한 온도 차를 드러내고 있고 대북 정책의 수단과 방법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북한 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한국이 북미, 남북한 간의 대화와 협상을 우선하고 있다면 일본은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한국이 민족문제로서의 북한문제와 안보문제로서 북핵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데 반해, 일본은 안보문제와 납치문제, 전후처리 문제라는 시각으로만 북한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차이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함에 있어 일본의 건설적인 역할을 견인하여 일본이 북한의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적극적인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일본은 북핵,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 한국과 더불어 최대 이해 당사국이다. 또한 일본은 북한에 대해 수백억 달러에 상당하는 청구권 자금을 지불할 의무를 지니고 있고 이 자금은 향후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을 재구축하는 데 긴요하게 쓰일 수 있다. 아베 정부에 이어 스가 정부는 북한과의 조건 없는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하는 등 대북협상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일본의 건설적 역할을 견인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 문제와 통일을 염두에 둔 일본과의 관계 재정립이야말로 한국이 고려해야 할 대일 외교의 핵심적 고려 요소이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반도 문제는 일본에 핵심적인 관심사였고 메이지 유신 이후 한반도는 일본의 안전보장에 치명적인 요소로 인식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나아가 통일 과정에서 일본 변수의 관리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