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낙동강 발원지가 태백이라는 사실은 제법 알려져 있다. 태백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황지연못은 낙동강이 시작되는 곳이고, 금대봉 아래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다. 대표적 고원도시 태백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전라북도의 또 다른 고원 진안과 장수에는 각각 섬진강과 금강 발원지가 있다. 두 군의 경계인 팔공산(1,148m)을 기준으로 서쪽에는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이, 동쪽에는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이 위치한다.
데미샘의 ‘데미’는 ‘더미’의 지역 사투리로 곧 산봉우리를 의미한다. 주민들은 샘 동쪽에 솟은 봉우리를 천상데미(1,080m)라 부른다.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니, 데미샘은 천상봉에 있는 옹달샘이다.
진안 백운면 데미샘은 천상데미 바로 아래 고지대에 위치하지만 데미샘자연휴양림(해발 약 700m)까지 차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다. 휴양림 입구에서 완만한 산길을 따라 약 1.3㎞, 넉넉잡아 40분이다. 장수로 넘어가는 옛 고개마루인 오계치로 오르다가 오른쪽 작은 계곡으로 길이 나 있다. 계곡을 따라가는 좁은 오솔길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수량이 적어도 바위 아래로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돌덩이마다 녹색 이끼가 잔뜩 덮여 있는 것으로 보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계곡이다. 산 아래 마을에 비하면 3~4도가량 기온이 낮아 한여름 피서지로도 제격이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즈음 작은 정자가 보인다. 바로 옆이 데미샘이다. 맑은 옹달샘에서 차가운 물이 샘솟는 걸 상상했는데, 겉모양은 조금 실망스럽다. 단풍나무와 산죽으로 둘러싸인 샘 주변은 널찍한 너덜지대다. 동그랗게 쌓은 낮은 축대 아래에서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떠서 마시지는 못하고 손만 씻었다. 역시 차갑다. 이곳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진안 순창 임실 곡성 구례 하동을 거쳐 광양만 앞바다로 흐른다. 국내에서 네 번째로 긴 223.86㎞ 강이다.
데미샘자연휴양림은 숙소인 휴양관과 숲속의 집, 물놀이장과 숲길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자연휴양림으로는 드물게 두 채의 한옥 숙소(수향채와 운향채)를 보유하고 있다. 깊은 산중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선사하는 시설이다. 천상데미와 맞은편 선각산(1,141m)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크게 어렵지 않다.
금강 발원지 뜬봉샘은 데미샘에서 찻길로 약 20㎞ 떨어져 있다. 팔공산 자락을 구불구불 넘어가는 도로로, 한적하게 산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뜬봉샘 역시 팔공산 줄기인 신무산(897m) 능선 부근에 위치한다. 뜬봉샘이라는 지명은 ‘봉황이 날아오른 옹달샘’이라는 뜻이다. 신비로움을 더하자면 그럴듯한 전설로 포장하는 게 최고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신무산 중턱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를 하던 중, 봉황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자리에 찾아가 보니 옹달샘이 하나 있어 ‘뜬봉샘’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뜬봉샘 가는 길은 장수읍 수분마을의 ‘금강사랑물체험관’에서 시작된다. 생태공원과 목재 데크로 연결된 숲길을 통과해 완만한 등산로를 오르는 약 1.5㎞ 길이다. 현재 목재 데크 숲길 구간은 보수 공사 중이어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로 우회한다. 약 300m를 돌아가는 길이지만 한여름 땡볕에 실제보다 길게 느껴진다.
등산로로 접어들면 다시 울창한 숲길이다. 청량한 물소리는 없지만, 고산의 숲길은 충분히 시원하다. 뜬봉샘은 데미샘보다는 모양새를 갖췄다. 능선 부근에 제법 넓은 평지가 형성돼 있고, 동그랗게 쌓은 석축에 샘물이 고여 있다. 옆새우와 가재가 살고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1급수임을 증명하는 지표 생물이지만 역시 마실 물은 아니다. 옹달샘에서 졸졸 새어 나온 물은 북으로 흘러 장수 무주 금산 옥천 대전 보은 땅을 적신 후,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세종 공주 부여 논산 서천을 거쳐 군산 앞바다로 흐른다. 장장 397.25㎞ 금강이다.
내려올 때는 올라온 길 대신 임도를 거쳐 ‘자작나무 힐링숲’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다. 산 중턱에 제법 큰 규모의 자작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식생 때문인지 흔히 상상하는 자작나무처럼 때깔이 새하얀 모습은 아니다. 매끈한 자작나무에 비하면 옹이 자국도 다소 투박하다. 그럼에도 초록의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이 선선하다. 다시 생태공원으로 접어들면 원추리와 나리꽃이 화사하다. 곧 무더위의 기세가 꺾일테니, 볕 좋은 가을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