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도, 인대 파열도 이겨낸 인생 드라마... 이것이 '올림픽 정신'

입력
2021.08.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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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금메달 못지않게 남모를 어려움을 이겨내고 도쿄올림픽 무대에 선 선수들이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누군가는 암을 이겨냈고, 경기 직전 인대 파열 위기를 극복했으며, 난민으로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서도 그곳에 섰다. 이들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은 금메달을 따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난관도 넘어서는 인간의 의지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5일 여자 기계체조 경기에 출전한 자메이카의 다누시아 프랜시스(27)는 예선 최하위로 경기를 마쳤지만 그 어떤 선수보다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프랜시스는 예선 경기를 이틀 앞두고 훈련 도중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걷기조차 힘든 심각한 부상으로 일반인이라면 바로 수술을 해야 했다. 의사들도 경기 불참을 권했지만 프랜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프랜시스는 예선에서 부상을 입은 왼쪽 무릎에 붕대를 감은 채 이단평행봉 연기에 나섰다. 통증에 11초밖에 연기를 지속할 수 없었지만 심판진은 프랜시스에게 수행점수에서 9.033이란 높은 점수를 줬다. 그의 투지를 점수로 환산한 셈이다. 자메이카 대표팀은 “우리는 프랜시스의 용기가 그 어떤 것보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 주장이자 맏언니 김지연(33)은 지난해 2월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올림픽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리려는 마음에 강도 높은 운동을 이어온 게 화근이었다. 회복이 쉽지 않고, 회복되더라도 장애를 남길 만큼 큰 부상이다. 선수생명이 아예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지연은 뼈가 끊어져 나가는 고통을 감내하며 재활에 전념했다. 김지연은 31일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가 될 수 있는 단체전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마지막 45점째를 올리며 한국의 여자 사브르 단체전 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걸었다.


백혈병 투병을 딛고 강한 집념으로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도 있다. 일본의 20세 여자 수영 스타 이케에 리카코가 주인공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수영 6관왕이었던 그는 이듬해 2월 청천벽력 같은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백혈병이었다.

골수이식 등 약 10개월간 입원 과정을 거쳐 같은해 12월 퇴원했다. 항바이러스제를 매일 복용하느라 체중이 15㎏ 넘게 빠지기도 했다. 당시엔 그가 수영을 다시 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케에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케에는 이번 올림픽 여자 계영 400m와 남녀 혼계영 400m에서 모두 9위로 예선 탈락했지만 경기 후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환하게 웃었다.

태권도 80㎏ 이상급에 출전한 한국의 인교돈(29)도 2014년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 수술을 받았다. 전이 속도가 빠른 림프종은 활동량이 많은 운동 선수에겐 치명적이다. 하지만 치료에 전념했고, 항암치료를 받은 지 1년여 만에 병이 호전됐다. 2019년에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인교돈이 2년여 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29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이다. 인교돈은 이 같은 우려를 실력으로 반전시켰다.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여성 탄압’에 망명을 해 난민팀으로 출전한 이슬람국가 태권도 선수도 있다. 도쿄올림픽 난민팀 대표로 태권도에 출전한 키미아 알리자데(23)는 이란 출신이다. 그는 18세였던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57㎏급에 출전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란 사상 최초의 여성 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알리자데는 지난해 1월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망명을 선언했다. 그는 보수적 이슬람 국가인 이란의 여성 탄압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지난해 독일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제 국적 없이 출전한 생애 두 번째 올림픽에서 아쉽게도 결승 문턱을 넘어가지는 못했지만 알리자데는 “나는 6번의 무릎 수술을 했다. 매 순간 나 스스로 ‘할 수 있다’, ‘회복할 수 있다’고 외쳤다. 내 목표가 메달만은 아니다. 태권도는 내 힘든 시절을 이겨내게 해줬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