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대한 열정

입력
2021.07.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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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쓰시오. '그 왕국에서는 (①)이 너무도 완벽한 수준에 이르러 한 도의 (②)는 한 시 전체를 담고 있었고, 한 왕국의 (②)는 한 도 전체를 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거대한 (②)들조차 만족감을 주지 못했고, (②)학교들은 왕국과 똑같은 크기에 완전히 왕국과 일치하는 왕국(②) 하나를 만들었다.'

선생은 질문을 한다. 미나씨, 1번 정답이 뭐죠? 미나는 준비했다는 듯이 웃으며 정답을 말한다. 지도술입니다. 잘했어요. 선생은 미나 옆에 앉아 있는 앤디에게 묻는다. 자, 그럼 앤디씨, 2번 정답은 뭐예요? 앤디도 망설이지 않고 답을 말한다. 지도입니다. 잘했어요. 선생은 계속해서 한 명씩 학생들을 호명하고 정답을 묻는다. 학생들은 척척 정답을 내놓는다. 교사는 칭찬을 포상으로 던져준다. 막힘이 없다. 질문-정답-칭찬, 질문-정답-칭찬, 질문-정답-칭찬.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듯 경쾌하게 수업이 완성된다.

앞서 소개한 지문은 보르헤스의 '과학에 대한 열정'이라는 소설이다. 이 지문을 가지고 한국어 수업을 하지는 않겠지만 한국어 수업을 가정한 모의수업 실습에서 실습생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한다. 나는 원하지 않는 방식이다. 모의수업이 이렇게 전개되면 나는 실습생이 제출한 교안 한쪽 구석에 '시험' '재난' '비대칭' '권력' '문제 풀이'라고 메모해 둔다. 다른 실습생들은 빵점짜리 '학생' 연기를 하는 중이다. 이들이 연기하고 있는 학생들은 모르는 게 없고, 졸지도 않으며, 수업 중에 다른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이 학생들은 교사의 말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그야말로 꿈의 교실이다.

과연? 실제의 수업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본다. 문제 푸는 일에 흥미를 잃은 학생들이 슬금슬금 떠든다. 그런 모습을 보자 교사는 수업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싶어진다. 떠드는 학생 하나를 골라 교사는 문제의 답이 뭔지 묻는다. 교사의 질문은 교실 안에 차가운 침묵을 끼얹는다. 오,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질문을 받은 학생은 당황해하며 말문을 잃고, 다른 학생들은 고개를 숙여 교사의 시선을 피한다.



교사가 가장 쉽게 빠지는 악마의 유혹이 뭔지 아세요? 나는 모의수업에 대한 평가를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건 바로 학생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거예요. 이런 말을 하면 모의수업 시연자 중 열에 아홉은 ‘내가 언제?’라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간다. 수업에서 문제에 대한 정답을 확인해야 할 때, 굳이 한 사람씩 지목해서 그 학생이 답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실 필요가 없어요. 그냥 전체 학생에게 물어보면서 답을 확인해 가세요. 시연자가 묻는다. 그래도 학생들이 답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명씩 확인해야 하지 않나요?

글쎄요, 한 명씩 지목했다고 해서 그 학생의 머릿속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여러분이 학생들에게 교사가 가진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것에 불과해요. 교실에서 힘의 구도는 비대칭이에요. 압도적인 권력이 교사에게 집중되어 있죠. 그런 힘을 가지게 되면, 누구나 그 힘을 행사하고 싶어져요. 이때 질문은 교사에게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는 자'임을 의식하게 합니다. 자신이 질문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고, 상대방이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죠. 반대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감각만 증폭시킵니다. 일종의 재난이죠. 그렇게 무기력함에 길들여집니다. 이렇게 나의 힘을 확인하는 것. 이것은 은밀하지만 커다란 기쁨입니다. 우리가 신이 된다면 그런 느낌을 받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질문에서 학생들은 배우지 않습니다. 그들이 배우는 것은 오직 힘에 굴종해야 한다는 사실뿐입니다.

질문으로 우리는 거의 모든 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 질문으로 우리는 비난을 할 수 있고(고작 그것밖에 못해?), 요구를 하기도 하며(그거 한 입만 먹어 볼 수 있을까?), 감탄을 하기도 한다(이거 정말 괜찮지 않아?). 능숙한 교사는 다양한 종류의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끌어 내고 그 지식을 축조해서 새로운 앎을 유도한다. 그러나 학생이 특정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은 그렇지 않다. 그런 질문은 검사하고 판정하는 행위다. 이런 질문은 수업을 불심검문으로 만든다. 자,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이 검문을 통해 학생은 정답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분류된다. 대답을 못한 책임은 온전히 학생의 몫이 된다. 다시 말해 검문으로서의 질문은 교사의 교육 부재를 공부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학생의 잘못으로 가공한다.

여러분이 방금 한 것은 수업이 아니라 문제 풀이입니다. 나는 독설을 이어나간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2차원 종이 위에 존재하는 질문과 대답의 묶음인 '시험'을 교실이라는 3차원의 공간에 입체적으로 구현한 것일 뿐이죠. 플라톤은 우리의 현실이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했는데, 여러분은 교실에서 시험이라는 이데아의 그림자를 만들어낸 겁니다. 여러 질문의 종류 중에서 판정하는 질문만을 했다면 여러분은 교사가 아니라 인간 시험지이자 답안지의 역할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학생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고, 문제 풀이 수업을 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어김없이 실습생들은 모의수업에서 문제 풀이를 하고, 학생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내게는 이미 익숙한 절망이다.



중국에서 과거제도가 발명된 이후, 이런 고민은 항상 있어 왔을 테니 이런 절망은 2,000년이 넘은 절망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시험은 신분제 사회에서 능력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사회를 운영하고 조직하는 장치로 끊임없이 진화하며 지금도 전 세계에서 번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발명품이다. 이경숙은 '시험국민의 탄생'에서 그 비결을 시험이 사람들의 정신을 시험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과 형식 속으로 수렴시킨다는 점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시험은 응시자의 자율을 보장하기에 느슨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정신적 통치 장치이다.

그러나 시험은 언제나 실패하는 기계이다. 시험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는 능력 중에는 본디 측정할 수 없는 것이 더 많고, 측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부분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도도 마찬가지다. 지도는 본질적인 특성상 끊임없이 실패하는 기계, 아니 실패해야만 작동하는 기계이다. 우리는 지도가 실재의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서울시의 지하철 노선도는 서울시의 지하철 노선의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도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는 순간 지도는 작동하지 않고 길 찾기는 지옥이 된다. 보르헤스가 '과학에 대한 열정'에서 상상한 왕국의 크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지도는 지도가 아니다.

시험이 특정 평가 대상의 능력을 형상화한 지도라고 생각해 보자. 시험은 질문과 대답의 구조 안에서 누군가의 능력을 효율적으로 시각화시키는 지도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지도는 언제나 지형의 일부만을 보여주거나, 잘못된 지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시험에 대한 열정은 보르헤스가 그린 왕국 사람들의 지도에 대한 열정 못지않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은 시험이 평가 대상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나아가 시험에 의한 분류에 따라 마땅히 혐오하고 차별할 수 있다는 지적 인종주의를 철저히 내재화한다. 그러나 지도가 실재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믿음이 길 찾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시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은 현실에서 우리의 방향 감각을 마비시킨다. 실제로 ‘인공국 사태’등 공정성이란 이름으로 불붙은 각종 논란은 우리 사회의 방향 감각이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우리의 왕국은 보르헤스의 왕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시험이라는 틀로 포획하고 평가하며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건물 이름을 영어와 한자로 쓰게 하고, 근무하는 조직이 처음 시작된 연도를 찾게 하는 서울대 청소노동자 대상의 시험 문제들은 그 증거 중 하나이다. 청소노동자의 청소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시험은 작동하지 않는 지도이지만, 원래부터 이 지도의 제작 목표는 청소노동자의 능력 평가에 있지 않았다. 이 시험의 제작 목표는 관리자에게 자신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선사하고, 시험에 의해 분류당한 노동자들에게 무기력과 굴욕감을 부여하여 관리자의 통제에 굴종하게 하는 데 있었다.

자 이제 보르헤스 왕국의 끝이 어떠했는지를 문제로 풀어보자. '다음 세대들은 그 널따란 지도가 쓸모없다고 생각했고, 약간은 불경스럽게도 그 지도를 태양과 거울의 자비에 내맡겨버렸다. 동물들과 거지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지도의 (③)들은 남서부의 사막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다.' 질문. 위의 3번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정답은 '폐허'다. 그 폐허가 지금 우리의 눈앞에 당도해 있다.

백승주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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