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컷' 국가대표에 "페미냐" 묻는 건 자존심이 상해서다

입력
2021.07.31 04:30
11면
<29> 차별을 위한 구별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쟤 페미 아니야?"

"쇼트컷하면 다 페미임."

"여자 쇼트컷은 걸러야 됨. ㅋㅋㅋ. 그래도 국대니까 봐줌."

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와 사격 국가대표 박희문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는 영상과 보도 기사 등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심지어 안산 선수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왜 머리를 자르나요?"라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쇼트컷을 한 여성은 페미니스트이고, 나쁜 여성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이에 6,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SNS에 자신의 쇼트컷 사진을 올려서 항의했다. 그러나 일부 남성들은 안산 선수에게 금메달을 반납하고 사과하도록 하라며 양궁 협회에 압력까지 넣었다.

21세기도 5분의 1이나 지난 2021년 현재 벌어진 일이다. 어이없다. 머리카락을 기르든 쇼트컷을 하든 삭발을 하든, 타인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무례하다. 단지 여성 선수라고 그런 질문을 받고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를 밝힐 의무는 없다. 공격적 의도도 느껴진다. 일종의 마녀사냥을 위한 사상검증 목적으로 페미냐고 묻는 남성들이 많은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왜 이럴까? 쇼트컷을 한 여성이나 성차별주의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를 인격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인 양 몰고 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여기에는 이성애자 남성들이 쇼트컷보다 긴 머리카락 여성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 이상의 이유가 있다.

유독 성차(性差)를 부각하는 인간세계

다른 동물과 비교해 볼 때 인간종의 성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다. 공작새나 사자 암수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체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고릴라 같은 영장류의 다른 종과 비교해도 인간의 경우에는 큰 차이가 없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성 차별이 심한 사회일수록 성별 체격차가 많이 난다고 한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남성들이 더 먹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겉으로 보기에 성차가 뚜렷한 종이 아닌데, 굳이 인간 사회에서는 남녀 성차를 부각시킨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성별로 옷을 달리 입도록 규정한다. 남성은 바지를, 여성은 치마를 입도록 하고, 다른 성의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반드시 남성은 바지를, 여성은 치마를 입는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현재 글로벌 포멀 복장이 서구식 바지와 치마이므로 편의상 이렇게 쓴다.

또, 인간의 기본을 남성으로 두고 거기에 여성이라는 기호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남성과 여성을 구별한다. 여성은 머리카락을 남성보다 더 길게 기르거나 속눈썹을 붙이거나 입술과 볼, 눈두덩에 색조 화장품을 발라 색을 입히는 꾸밈을 해야 한다.

이렇게 남성은 기본으로 놓고 여성에게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기호를 덧붙이는 방식은 마스코트 동물을 디자인하는 방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롯데월드 마스코트인 로티와 로리를 보자. 둘 다 너구리인데, 여성 너구리를 나타내기 위해 한쪽에 치마를 입히고 속눈썹과 리본을 붙였다. 여성 경찰 마스코트인 포순이에는 작년 7월 전까지만 해도 속눈썹을 붙이고 치마를 입혔다.

아, 예외도 있다. 늘 여성에게만 무언가를 더 부착하는 방식이지는 않다. 착용해서 편리하거나 권위, 문명개화의 상징이면 남성에게만 허용된다. 뉴스 진행자들을 보라. 둘 다 시력이 나빠도 남성은 안경을 쓰고 나오지만 여성은 콘택트렌즈를 착용해야 한다. 이래저래 여성만 더 불편한 쪽이다.

그래서 성인 여성은 출근 등 공식적인 자리에 나갈 때는 여성이라는 기호를 덧붙일 것을, 즉 치마 착용과 화장을 강요받는다. 데이트 등 사적인 자리에도 남성과 만날 때는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할 것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꾸미지 않고 나왔을 경우 상대 남성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서운해하거나 무례하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같은 여성인데도 상급자/연장자 여성이 하급자/어린 여성에게 그렇게 굴기도 한다. 왜 그럴까? 왜 여성들은 공식적인 자리나 남성/명예남성(남성중심사회에서 성공을 위해 자신을 남성과 동일시하는 여성) 앞에서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야 할까? 왜 그것이 의무이고 예의일까?


'유대의 별'과 긴 머리카락

1941년 9월 1일, 히틀러의 나치 치하 독일에 '유대인 식별에 관한 경찰 명령'이 발표됐다. 6세를 넘은 유대인은 '유대의 별'을 달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금지됐다. '유대의 별'은 황색 헝겊 안에 손바닥만 한 검은 육각형의 별을 그려 넣고, 그 안에 유대인이라고 써넣어 만든다. 유대인들은 이를 의복의 왼쪽 가슴에 꿰매 착용해야 했다.

정삼각형과 역삼각형을 겹쳐 만든 육각별 문양은 원래 유대교에서 '다윗의 별'이라 불렸다. '다윗의 방패'를 의미하는 이 별은 유대인에게 '신의 수호'를 상징했다.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 왕은 이 별을 유대 왕가의 문장으로 삼았다. 현재 이스라엘 국기에도 이 별이 있다. 그러나 나치는 이를 '유대의 별'이라 부르며 유대인 차별이나 박해에 이용했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별을 달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대인의 외모는 일반적인 유럽인들과 한눈에 봐서 분간하기 어렵다. 그래서 독일인 사이에 섞인 유대인을 빨리 알아보기 위해 차별의 표지를 부착시킨 것이다. 구별할 수 있어야 차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치마와 긴 머리카락, 화장을 요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화장 안 한 얼굴에 짧은 머리카락, 헐렁한 상의, 통 넓은 바지 차림이면 얼핏 보아 남성들 틈에서 여성을 구별해 낼 수 없다. 즉, 유대인의 별이나 여성성을 드러낸 차림은 둘 다 2등 시민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쉽게 구별하여 차별할 수 있게 하는.

성인 여성이 화장을 안 하고 꾸미지 않으면 예의가 없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 꾸밈을 하지 않는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유대의 별'을 달고 나오지 않은 것이므로 상대하는 남성의 기분-1등 인간이란 우월감-을 상하게 한다. 상대 여성이 아무 무례한 언행을 안 했어도 자신과 동급인 디폴트 인간으로 하고 나온 것 자체가 무례하다. 남성인 자신이 무시당한 것 같다. 하급 인간인 주제에 자신에게 예쁘게 보이려 노력하지 않았으므로 괘씸하다.

'구분 가지 않는다'는 괘씸죄

다시 여성의 쇼트컷 이야기로 돌아가자. 쇼트컷을 하는 여성보다 긴 머리 여성을 더 여성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머리카락 길이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들이 길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에서 자신의 2세를 생산하기 좋은 건강한 여성을 알아본다니 어쩌니 하는 설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게 진화된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학습된 것이다.

보통 남성의 헤어스타일은 짧은 머리, 여성은 긴 머리로 여긴다. 왜 그럴까? 서구 기준으로 볼 때 남성들은 투구 쓰고 전투하기 편리하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여성은 그렇지 않기에 길렀던 역사가 있기는 하다. 남성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지만 여성은 인간과 동물의 중간적인 지능을 가진 불완전한 남성이니, 여성에게는 동물성을 강조하는 차림을 할 것이 강요된 사실도 있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성적 대상화가 되도록 육체를 드러내는 옷차림을 하는 한편, 길게 머리카락을 기른다. 긴 머리카락은 동물성과 비문명화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비서구권에서 강제 개항을 하여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 개화기에 대대적으로 단발을 한 이유다. 긴 머리카락이 여성스럽다고 생각하는 편견에는 이런 유래도 있다.

핵심은 여성인 주제에 남성과 구분이 가지 않는 차림을 하는 것을 문제로 여긴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쇼트컷을 한 여성을 페미니스트로 여겨서 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2등 인간이므로 남성과 쉽게 구별되어야 하는데, 구별할 수 있어야 차별할 수 있는데, 그 구별을, 차별을 없애려는 사람들이 바로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젠더란 가변적이고 그 사회에서 허용하는 방식으로 수행되기 마련인데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넘나든다. 결국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이성애자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존재이므로 그들 입장에서 보면 나쁜 사람들이다.

여성의 차림과 화장, 꾸밈 노동 강요에 대해서는 보다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주제와 관련된 부분에만 집중해서 썼다. 이 글의 결론은 여성들은 무조건 쇼트컷하고 바지만 입고 전혀 꾸미지 말라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 어떤 차림을 한 어느 성별이든 강요받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많은 상식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라고 믿는다.


박신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