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이 어른들의 분노 해소 대상인가

입력
2021.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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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한 중학생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전 동거녀의 헤어지자는 말에 앙심을 품고, 그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수사 내용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더욱이 지속적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껴 경찰에 보호조치까지 했던 상황이라 하니 마음이 더 무겁다.

이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동거녀의 아들은 인격체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는 수단이었다. 어린 아이에게 일상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을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안전을 호소해도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 사회를 원망하며 그렇게 죽어갔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한 명의 소중한 아이를 잃었다. 벌써 몇 번 째인가. 셀 수 조차 없을 정도다.

잔혹한 아동학대와 치사사건이 끊이질 않고, 사실상 자녀살해인 부모에 의한 동반자살이 일어나고,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그리고 어른들은 아동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가? 여전히 부모의 소유물, 아직 인격체가 아닌 존재, 마음대로 해도 되는 약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진지하게 자성해 봐야 한다.

100여 년 전 방정환 선생은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선언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의 날 선언을 했다. 어린이를 자기 물건 같이 여기지 말고, 어린 사람의 뜻을 존중하고,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라 했다. 100년 전보다 아동의 인권은 나아졌지만, 그의 가르침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일은 정부와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며 의무여야 한다. 그의 어린이에 관한 생각은 보호를 넘어선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이고, 뿌리인 어른이 새싹인 어린이를 위해야 그 나무는 뻗쳐나간다고 했다. 또한 대우주의 뇌 신경의 말초는 늙은이도, 젊은이도 아닌 오직 어린이에게만 있다고 했으니, 그의 사상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린이에 대한 투자가 곧 미래의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투자임을 강조한 것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한 명 한 명 너무도 소중한 새싹들이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새싹들이 꽃도 피기 전에 상처받고, 시들고,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뿌리를 통해 전체 나뭇잎에 자양분을 주는 동시에, 새싹 하나하나가 건강히 잘 자랄 수 있도록 관심 가져주고 보호하고 영양제도 주어야 한다.

2022년은 어린이날 100주년의 해다. 같은 달 20대 대통령이 취임한다. 아동들은 독립적 인격체이고 우리의 미래이다. 그들의 기본적 인권 보장을 넘어 아동들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그리고 초초저출산 대응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공평한 출발을 최대한 보장하고 잠재적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하려면 기존의 영유아 돌봄‧교육정책, 초‧중‧고 교육정책, 복지, 문화, 환경정책 등을 전환적 발상으로 창의적이고 통합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동들의 행복한 성장은 우리들의 행복이며 미래의 희망이다. 국민과 새 대통령이 함께 새로운 100년의 획을 그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