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통보했던 대로 26일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안전 전시공간(기억공간) 철거를 시도하며 또 유가족과 충돌했다. 철거는 예정된 것이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때문이라지만 서울시가 이전·재설치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 하고 대안 논의를 위한 협의체 구성도 거부하는 것을 보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목적은 결국 세월호 지우기인 모양이다. 광화문광장에는 2014년 7월 분향소·추모 천막이 세워지면서부터 세월호 공간이 존재했다. 기억공간이 들어선 것은 2019년 천막이 철거되면서다.
□ 돌이켜 보면 참사 이후 7년의 세월은 기억과 삭제의 투쟁이었다. 세월호 인양은 언급조차 금기시되다가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인양 방침을 발표했으나 2017년 3월 탄핵 직후에야 선체가 물 밖으로 나왔다. 수학여행 일정이 표시된 그해 4월의 달력, ‘꼭 돌아오기’라 쓰인 칠판, 미안하다는, 보고 싶다는 편지가 놓인 단원고 기억교실은 논란 끝에 신입생들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지난 4월 문 연 경기 안산시 단원구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복원됐다.
□ 참사가 논란 수준을 넘어 막말과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이 가장 비극적인 대목이다. 26일 기억공간 주변엔 극우 유튜버들이 몰려 촬영을 시도하며 유가족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2014년 9월에는 단식농성을 하는 유가족 옆에서 폭식투쟁을 벌인 이들이 있었고, 인터넷에는 “애도를 멈추라”는 글이 넘쳐났다. 세월호를 정쟁화한 정치의 책임이 크다. 청와대는 참사 3주 후 청와대를 찾은 유가족들에게 “순수 유가족만 만나겠다”며 불순세력 취급을 했고, 일부 의원들의 망언은 도를 넘었다.
□ 세월호는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슬퍼하고 극복해야 할 국가적 비극이었다. 진영의 입장이나 정치적 득실을 따지기엔 너무 거대한 상실이었다. 슬픔과 상실을 나누는 태도로 참사를 수습하고, 기억하고 추모함으로써 더 나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면 세월호는 박근혜 정권의 오점으로 남지 않았을 것이다. 구조의 실패에 이어진 정치의 실패가 지금 또 반복되려 하고 있다. 오 시장은 어떤 정치인이 되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