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격화가 우리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갈등 격화로 인해 자칫 미국이나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소위 ‘줄 세우기’ 상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드 사태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우리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은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 미중 간 갈등이 초강대국 간 기술패권 경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계속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우리 나름대로 국익에 입각한 대응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미국의 요구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바이든 행정부가 추구하는 대중국 탈동조화(decoupling) 정책 중 대표적인 반도체 동맹 구축도 이를 보는 미국의 기업이나 업계, 정부 관계자의 시각이 조금씩은 다르다. 정부 관계자 중에서도 안보나 국방 관계자와 경제나 외교 담당자의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해당 기업이나 업계의 시각은 매우 현실적이다. 일단 완벽한 대중국 탈동조화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특히 단기에는 불가능하다). 다만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역할과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단기에 미국의 반도체 제조능력을 끌어올릴 수 없기 때문에 한국과 대만의 미국 내 제조시설 투자가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안보 관계자의 시각은 중국을 보는 눈부터 다르다. 중국을 미국의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경쟁국, 그것도 적대적 경쟁국가로 인식한다. 따라서 5G와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소재인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적극 막고 있다. 이들은 중국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당연히 한국이 미국 주도 반도체동맹에 참여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이로 인해 초래될 비용도 감수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경제적 계산보다 안보가 더욱 중요하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경제나 통상, 외교 관계자의 시각은 안보 관계자의 시각보다 유연하다. 이들도 중국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주도 동맹에 참여하기를 원하며, 이를 위해 동맹의 중요성과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며 상호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한다. 가끔 첨단기술이 아닌 것은 부분적인 중국 이전도 눈감아주기도 한다. 당연히 극단보단 균형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균형은 늘 미국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처럼 미국의 시각이 관계자별로 다른 것은 대부분의 정책이 상향식으로 만들어져 바닥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상층부로 올라가면서 서로 조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도 미국 내 정책 관계자별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 정부만의 대응보다는 기업과 산업계가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학계나 전문가집단이 설득 논리를 만들어 정부와 업계를 지원하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미국 워싱턴 현지에서 행정부와 의회, 전문가그룹을 상대해 우리의 입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할 전문기관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수십억 원 남짓 돈을 주면서 수천억 원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