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서로 "이재명, 윤석열 나오면 생큐"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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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6 16:00
24면

편집자주

‘송용창의 정치행간’은 의회와 정당, 청와대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상대하기 더 편하다.”(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윤석열 후보는) 야당의 대선후보 진출을 막는 짐차다.”(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여야에서 차기 대선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두고 상대 진영에서 나오는 소리다. 경쟁이나 하듯 양측 모두 상대 1위 주자를 향해 ‘(본선에) 나오면 생큐’라는 식이다. 선두 주자에 대한 견제와 교란 성격이 강하지만, 그만큼 본선 상대가 누가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역대 어느 때보다 여야 모두 예선전부터 치열하다. 민주당 경선에선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가 점입가경의 난타전을 벌이고 있고 야권에서도 '윤석열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대표주자를 놓고 혼전이 예고되고 있다.

이런 다자 구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진영 내 강자와 중원을 놓고 다투는 본선 전의 강자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여권과 야권 모두 상대 측 예선전을 보면서 속으로 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복잡 미묘한 구도에서 여권이 보는 야권 강자, 야권이 보는 여권의 강자는 누구일까.


“이재명이 까다롭다” VS “이낙연 상승세 무시할 수 없어”

이준석 대표의 호언과 달리 그간 야권에선 이 지사에 비해 이낙연 전 대표가 상대하기 쉽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야권으로선 대선의 가장 큰 에너지원이 정권 심판론인데, 비문(非文)의 이 지사가 본선에 나오면 심판 구도가 선명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현 정부를 계승하겠다는 후보가 나오면 정권 연장을 심판하는 구도가 돼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최장수 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대표가 아무래도 정권 실정을 부각시키는 데 유리하다는 얘기다. TK 출신인 이 지사의 경우 경선에서 몸을 낮추더라도 본선에서는 현 정부와의 차별화 행보로 영남 지역 표심을 헤집을 수 있어 까다롭다는 것이다. 2030세대 남성들이 여권에 등을 돌렸지만 이 지사에게는 지지를 보내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최근 여당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이와 상반된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TV 토론에서 바지 발언 등의 말 실수로 점수가 깎인 데 반해 이낙연 후보가 안정감을 보여준 것이 본선에서도 예상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야권 인사는 “코로나 시국에서 TV 토론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다”라며 “거친 언행의 이 지사보다 이낙연 후보가 중후한 이미지로 중도층에 호소력이 더 클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18년 대선에서도 TV 토론을 거치면서 지지율이 크게 출렁거렸던 것도 이런 분석의 근거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연신 “이재명 후보가 제일 쉬운 상대”라거나 “그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우리는 참 좋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시각을 담고 있는 셈이다.

선거 구도 VS 후보자 매력.. “여성 표심이 변수”

이 전 대표를 더 난적으로 보는 측은 선거 구도 외에도 후보자의 매력과 경륜이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정권심판 구도가 압도적이면 이 전 대표가 약체지만 구도 싸움 자체가 박빙이면 얘기는 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40%대로 다시 올라서 정권교체 여론도 박빙 추세여서 선거 구도만으로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맞물려 주목되는 것은 여성 표심이다. 국민의힘이 2030세대 남성 표심 잡기에 주력하는 동안 젊은 여성층의 반감이 더 커졌고 여권의 이 지사도 이를 흡수하지 못했다. '윤석열 대 이재명' 양강 구도 사이에서 표류하던 여성 표심이 이 전 대표로 흘러가면서 경선 구도가 출렁이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전 대표의 여성 지지율은 남성보다 2배가량 높다. 야권 일각에선 “이낙연 후보가 여성층 지지로 탄력을 받아 본선에 나오면 의외의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선거 구도를 중시하는 이들에겐 여전히 이 지사가 경계 대상 1호다. 정권심판론뿐만 아니라 세대 및 지역 구도 측면에서도 이 지사의 확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보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누가 뭐래도 정권교체론이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로선 이 구도를 흐트러뜨리는 후보가 더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내부 인사가 더 힘든 상대, 오세훈이 가장 난적”

그렇다면 야권 주자를 바라보는 여권의 시각은 어떨까. 윤 전 총장이 정권심판론의 기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여권으로선 이는 피할 수 없는 상수다. 여권 인사들이 내심 두려워하는 것은 정권심판론에 더해 후보자 매력으로 중도 확장성까지 갖춘 인사가 등판하는 경우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 선언 이후 보수 정체성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이고 처가 리스크가 커지자 여권 내에서 "지지율이 너무 빨리 가라앉을까 걱정이다"라는 비아냥이 쏟아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단순한 견제성 발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윤 전 총장의 대안으로 부각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경우도 도덕적 흠결이 없다고 하지만 실력이 검증되지 않아 위협적 상대는 아니라는 게 여권의 대체적 분위기다. 여권의 한 전략가는 “야권 지지자들은 윤 전 총장이나 최 전 원장에게 관심을 두지만, 보수 개혁 노선을 내세우며 이미 검증받은 유승민, 원희룡 같은 당내 인사가 본선에 나오면 훨씬 버거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을 가장 상대하기 힘든 적수로 꼽는 여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 서울시장이란 존재감과 인지도에다 내부 비토층이 적고 젊은 층과 여성 표심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갓 당선된 오 시장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대선 도전에 연이어 나설 명분이 부족한 상태다. 여권 일각에선 윤 전 총장 지지율이 빠르게 빠지고 다른 주자들이 지지부진해 오 시장에게 등판 명분이 생기는 게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라는 얘기도 나온다.

"여권 경선 진흙탕, 이탈층 상당할 것" 표정 관리하는 야권

요컨대 여야가 상대 측 강적을 보는 기준은 ‘확장성’이다. 하지만 확장성을 갖춘 후보가 진영 내부의 결집력까지 갖추기 어렵다는 게 정치 현실의 딜레마다. 이를 테면 유승민 전 의원이나 원희룡 지사가 본선에 나오면 여권으로선 상대하기 어렵지만 문제는 이들이 집토끼를 결집시킬 수 있냐는 점이다. 이재명 지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유승민 전 의원을 어려운 상대로 꼽으면서도 윤석열 전 총장이 야권 후보가 될 것이라고 관측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결집력과 확장성의 결합은 여권 주자들에게도 최대 과제다. 하지만 최근 여권 경선이 네거티브 공방전으로 과열 양상을 빚으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이 숙제의 실타래가 더욱 꼬이는 모습이다. 이 지사 측과 이 전 대표 측 지지자들 간 감정의 골이 깊어져 경선 이후 제대로 결합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특히 두 주자가 정책 대결이 아니라 도덕성과 정체성 싸움을 벌여 정서적인 결합이 쉽지 않다. 누가 후보가 되든 확장성은 차치하고 결집력부터 금이 가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야권에선 여당 지지층에서 상당한 이탈표 내지 기권표가 나올 수 있다며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예전 친이와 친박 싸움처럼 두 후보 측이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 아니냐”며 “이 지사가 경선에서 이기면 호남 보수층이 우리 측을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본격화될 야권 경선에도 부메랑처럼 적용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예선전에서 네거티브 경쟁이 극심해지면 결집력이 약해져 누가 확장성을 갖춘 강자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셈이다.


송용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