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공포라던 ‘랑종’, 마케팅에 낚인 건가요?

입력
2021.07.24 11:00

지난 14일 개봉한 공포영화 ‘랑종’이 요즘 국내 영화계에서 화제입니다. 개봉 즈음에 비하면 관심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한국 배우 한 명 나오지 않는 태국 배경 영화인 데다 팬데믹 시국인데도 열흘 만에 70만 관객을 동원하며 비교적 흥행에 성공했죠. 흥미로운 점은 관객 반응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는 것입니다. ‘역대급 공포’라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관객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또 누구는 ‘불쾌하고 지루한 최악의 영화’라고 악평을 합니다. '랑종'의 초기 흥행이 마케팅 덕분이란 말도 나옵니다. 그래서 문화부 기자 3인이 ‘랑종’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랑종', 정말 마케팅에 낚인 걸까요?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첫 인상

[라제기] ‘언제 무서워지나’ 잔뜩 긴장하고 보는데 끝나버렸어요.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가는 동안 자꾸 뭐가 따라 붙는, 기분 나쁜 느낌이었습니다. 참고로, 공포보다는 감성이 두드러진다는 드라마 ‘힐하우스의 유령’ 같은 거 봐도 일주일은 잠을 설칩니다. 그런데 ‘랑종’ 보고선 개운하게 자고 일어났어요.

[양승준] 전 '당연히' 영화 중간에 눈 감으면서 봤어요. 잔인한 걸 특히 못 보는 성격이라.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 올라갈 때 주위를 둘러봤는데 저만 앉아 있는 거예요. 엔딩 크레디트 봐야 하는데 그 어두운 극장에 혼자 못 앉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내려왔죠. 마침 스크린 앞에서 크레디트 보는 한 남성 관객이 있어서 동지 삼아 같이 서서 봤어요. 엔딩 크레디트를 이렇게 보긴 처음인 듯요. 상영관 나가선 '아 볕 좋은 곳에 좀 날 말려야겠다' 싶은 생각이 간절했어요. 이 눅눅함, 축축함 좀 말려 버리고 싶어서.

[고경석] 태국 영화계엔 좀 미안합니다만, 기대를 전혀 안 해서인지 ‘뜻밖에 괜찮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언론시사 때 아무런 정보 없이 봐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공포감이 한국 공포영화 중 평균 이상이긴 했지만, 긴장감에 비해 그리 무섭진 않았어요. 하지만 언론시사 후 반응을 듣고 봤다면 실망했을 듯합니다.


'랑종', 정말 무서운 영화인가?

[양승준] 잔인해서 무서웠던 것 같아요. 개 삶아 먹는 장면 등 빙의로 인한 기괴함때문에요. 핸드헬드 카메라로 쫒아가는 페이크 다큐란 형식 때문에 간혹 깜짝 놀라기도 했고요. 페이크 다큐로 보여주는 기괴함으로 멱살 잡혀 끌려가는 기분? 랑종'은 악령의 존재란 질문에선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한 하면 돼)’잖아요. 그 지점에선 '곡성'보다 상대적으로 덜 무서웠던 거 같아요.

[라제기] 미스터리한 이야기 구조가 공포를 자아내고 봐요. 미신, 무당, 귀신 이런 흔한 소재로 시작하는데, 알 수 없는 악령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잖아요. 그리고 믿음이라는 화두를 끝까지 붙들고 갑니다. 전통은 믿음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선조로부터 이어받아서 하는 건 그것이 과학적으로 맞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에서 비롯된 겁니다. 밍의 엄마가 남편 집안의 사업을 이어받아 개고기를 팔잖아요. 예전에는 아무 문제없었지만 현대에는 논란이 될만한 행동이죠. 정부에서도 금지하려고 하고요. 밍의 엄마는 예전부터 팔았고, 먹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물어요. 전통에 대한 믿음이죠. 그런데 그런 믿음이 명제가 아니라면, 그런 믿음이 흔들리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 저는 이런 메타포가 좋았어요. 믿음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혼돈의 세상으로 들어갔을 때 가지게 되는 찜찜함, 음습함이 공포를 만들어낸 듯해요. 개는 영화 초반부 등장해서 후반부 밍의 밍의 기이한 행동과 연결됩니다. 일관적인 메타포와 이미지로 말초적인 공포보다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공포라는 점이 저는 좋았습니다.

[고경석] ‘뭔가 이상하고 끔찍한 것에 영혼을 뺏기는데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엄청난 게 다가오지만 막을 방법이 없다’는 무력감이 공포를 주는 것 같아요. 뚜렷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의 존재는 너무도 막강하고, 악을 쫓아줄 거라 믿었던 신은 실제론 아무런 힘이 없는 데다 심지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는 점이 공포감을 키우지 않았나 싶어요.


페이크 다큐 형식은 성공적이었나?

[라제기] 다큐 형식을 취한 걸 보고 ‘와 무섭겠다’ 생각했다가 그 형식 때문에 초반부터 김이 빠졌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계속 무서워지려다가 자꾸 ‘아, 저건 가짜다’라고 각성이 된 듯해요.

[고경석] 페이크 다큐 형식이 좀 어설펐어요. ‘이건 허구가 아니라 리얼이야’ 하는 최면에 걸려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라제기] 시선의 일관성이 떨어져서 계속 몰입이 되지 않았어요. 예를 들면 밍이 카메라에 달려드는데, 넘어진 사람은 카메라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장면이 있죠. 어떤 때는 카메라를 사람이 따라가는 시점이었다가 또 어떤 때는 극영화의 전지적 관찰시점이어서, 이게 누구의 시선으로 보고 있나 혼동스러웠어요. 예를 들어 밍이 무개 버스를 탈 때 카메라가 차 안에서 먼저 위치해서 밍을 바라봐요. 밍은 무심코 아무 버스에 탄 듯한 모습입니다. 밍이 갑자기 강제로 버스에서 내리게 되는데 카메라는 예측했다는 듯 자연스레 따라붙는 장면 등이 어설펐습니다.

'랑종'이 전하려는 이야기는?

[라제기] 태국의 역사성을 담아내려 한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방직공작은 자본가를 의미하고, 자본가인 밍의 증조할아버지가 직원들에게 못된 짓 했다가 죽었잖아요. 할아버지는 방직공작에 일부러 불을 내 보험금을 타려다가 불행한 죽음을 맞았구요. 1960년대 태국 공산 게릴라 활동과 이를 무력으로 제압한 태국의 역사를 심어둔 듯해서 또다른 태국 영화 ‘엉클 분미’(2010)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두 영화 모두 태국 이산 지역이 배경입니다. 얽히고설킨 나무 뿌리들이 복잡다단한 역사에 대한 이미지로 활용됐다고 생각해요. 밍 집안의 저주는 거기서 비롯됐다고 봐요. 밍이 유기되는 장소가 방직공장이잖아요. 퇴마의식이 벌어지는 곳도 방직공장이고요. 바얀신 석상 목을 자른 것도 보이지 않는 어떤 원혼의 짓인데, 아마도 미신을 타파하려는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이미지인 듯해요. 마지막 장면도 상징적이잖아요. 바늘이 꽂힌 인형을 비추는데 , 밍의 성인 ‘야싼티야’라고 적혀있어요. 집안에 대한 원한이 밍까지 이어졌다는 의미이죠.

[양승준] 전 그 상징들이 좀 구태의연했어요. 누군가의 원한 그리고 미처 알지 못한 누군가의 폭력. 방직공장에서의 빙의 등으로 자본가의 횡포 등을 연결시키는데 또 다른 한편에선 믿음을 얘기하잖아요. 이 두 요소가 전 물과 기름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이상했고, 혼란스럽더라고요. 차라리 종교적, 무의식적 미스터리 이슈로만 끌고 나가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고경석] 이 영화에서 상징이나 은유는 별로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단 나홍진 감독의 개인적 종교관이 궁금했어요. 인간을 악의 근원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인간이 믿는 신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아주 약한 존재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하는 건 아닌지 말이죠. '곡성'도 그렇고 '랑종'에서도 선은 없지만 악은 분명히 존재하죠. 특히 '랑종'에선 자연은 선도 악도 아닌 상태인데 인간이 저지르는 악이 세상의 영혼들을 분노케 하고 악령을 만들어요. 그것이 다시 인간에게 악령으로 스며들고요. 악령들은 미러링 방식으로 복수하며 악의 근원인 인간들을 죽입니다. 그렇게 인간이 만든 악을 자연이 조금씩 없애는 거죠.

'랑종'은 왜 이리 불쾌한 걸까?

[라제기] ‘굳이 저 장면을 넣어야 했을까’ 하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어요. 밍이 하혈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여성 성기를 어떤 메타포로 쓰려했던 듯하기는 한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타포라는 게 딱히 명확하진 않고, 강렬한 이미지로 소비된 느낌입니다.

[고경석] 야싼티야 가문의 남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그들은 돌에 맞아 죽거나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암에 걸려 죽었어요. 반면 밍은 여자인데 유독 잔인하게 괴롭혀요. 개를 비롯해 여러 동물과 사람들의 원혼이 밍에게 들어가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넘어가긴 했지만 가학적인 측면, 그걸 관객에게 엿보게 하는 관음증적 측면(특히 화장실 장면과 성적 묘사 장면)이 불편·불쾌하게 만드는 건 사실입니다. 유아살해 묘사도 불필요해 보이고요. (간접적으로만 언급되는) 마닛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응징으로 이해하긴 했습니다만.

[양승준] 카니발리즘, 동물학대 묘사가 선을 넘었다고 봐요. 동물인권연대에서 이 영화에 반발하는 이유에 공감합니다. 개를 산 채로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 것까지 보여줘야 했나 싶어요. 잔인함을 너무 공포의 소재로 소비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불쾌한 거고.

[고경석] 개를 삶는 장면은, 죽임을 당한 개들의 귀신이 그 집안에 복수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희들이 우리들을 그렇게 식용으로 죽여놓고선 집에서 키우는 개는 아끼는 게 말이 되냐’ 하면서 보란 듯이 미러링하며 복수하는 거죠. 뜨악하면서도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봤어요.


바얀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양승준] 전 다른 부분에서 더 황당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님이 "진짜 바얀신이 있는지 모르겠어요"라면서 우는 장면 어떻게 보셨어요?

[라제기] 그 장면이 없었으면 저는 엄청 실망했을 듯합니다. 그 마무리가 있기에 영화의 메시지가 완성됐다고 봅니다. 믿지 못한다는 건 체제의 균열을 의미하잖아요. 믿음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지만, 믿음이 사라지면 모든 게 흔들리고 혼란이 오니까요.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가치관이 흔들리는 혼돈의 시대를 표현하는 장치로 좋았다고 봅니다. 님의 역할은 일종의 맥거핀(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뭔가를 해결할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은 인물이나 장치) 아닌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미신도 일종의 기존 사회체계 중 하나인데 그 한 축이 무너지니 퇴마의식도 실패할 수밖에요. 밍은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경석] 처음 볼 땐 바얀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건가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노이가 바얀신을 버리고 배교했을 때 바얀신이 노이와 님 가문을 떠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영화 후반부에서도 바얀신이 자신을 부정한 님을 죽인 뒤에 마지막 퇴마의식 때 노이에게 찾아가 복수한 거라 생각했고요. 세상에 (인간의 악행으로 인해 생긴) 악은 분명히 있지만 신(또는 선)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염세적 시선을 담은 게 아닌지. 그런데 나홍진 감독의 종교가 기독교 아닌가요?

[양승준] 전 그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내가 이거 왜 봤지?' '그래서 너희들이 얘기하고 싶은 게 뭔데?' 확 허무해지더라고요. 분명 영화에서 님은 신내림을 받아 밍의 빙의 관련 영험함을 곳곳에서 보여주잖아요. 그건 신이 있다는 거고. 그리고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악령이 있다는 ‘답정너’로 끌고 가고요. 그런데 막판에 님이 '신이 있는지 모르겠다'로 고백하며 끝나버려서 황당했어요. 자기들이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건 다 보여주고 마지막에 믿음에 대한 질문을 묻는다? 아이러니였어요.

[라제기] 님이 저렇게 죽거나 저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퇴마의식이 성공했을 거고, 그런 그저 그런 공포영화가 됐을 겁니다. 그런데 퇴마의식이 실패하면 어떤 요인을 제시해야 할 듯하고요.

[양승준] 전 님의 죽음을 축복이라 여겼어요. 그래도 저들 중에 바얀신을 믿은 게 님이었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전 님이 살아있어도 퇴마의식이 통하지 않았을 거라 봐요. 님의 오빠인 마닛의 아내가 결국 밍의 방을 열어 퇴마의식이 붕괴되니)에서 바얀신이 님에게 잠들며 죽는 시혜를 베푼 거라 생각했어요. 영화에서도 보면 잠들면서 죽는 게 축복이라고 하잖아요.

[고경석] ‘곡성’도 그렇고 ‘랑종’도 보고 나면, 나홍진의 이야기는 이상한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관객의 멱살 잡는 악력은 대단한데 논리적인 연결은 좀 허술한 데가 있는 듯해요. 일부러 그런 여지를 남겨놓는 거겠지만요. '곡성'에 비하면 텍스트의 두께감이 얄팍하긴 하지만, 기존의 한국 공포영화들에 비하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상당해요. 처음엔 바얀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궁금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상상하고 꿰맞추는 재미는 있을지라도 그 자체로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양승준] 바얀신이 없었으면 장례식장에서 밍이 님의 팔을 잡을 때 섬뜩해하는 장면이 나올 수 없죠. 그래서 이 영화가 논리적으로 무너진 게 아닌가 싶어요.

[라제기] 믿으면 없던 것도 생긴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바얀신이 있다고 생각하니 님에게 어떤 신기가 생겼다고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양승준] 그렇게 생각하기엔 영화가 너무 ‘답정너’ 아니었나요? 님은 신들렸다고 믿어서 빙의됐다고 쳐도, 님 죽은 뒤 언니 노이도 바얀신에 빙의되는데 향을 거꾸로 뒤집고 나면 주변 사람들이 다 빙의돼 하나씩 죽어가죠. 이들이 신내림 받았거나 빙의됐다고 믿어서 그런 짓을 했다고 볼 만한 명분이 없는 듯해요.

영화의 속임수 구조와 캐스팅에 대해

[라제기] 저는 이 영화가 몇번의 속임수 구조를 거치면서 미스터리를 만들어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밍이 밭을 산책하다 저기 사람이 보이냐고 묻잖아요. 밍이 신기가 있으니 홀로 귀신을 보나 보다 하는데, 카메라로도 사람이 포착되잖아요. 공포영화의 상투적 표현을 뒤집는 장면이죠.

[고경석] 뒷부분에 나오는 속임수는 좀 억지스러웠어요. 태국 문화와 관련이 있어서라곤 하지만 '이 차는 빨간색이다'라는 스티커를 붙인다고 귀신이 속는다는 게 이상했고 노이의 얼굴을 가려 밍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았어요. 악령이 겨우 그런 걸로 속는다고? 퇴마의식 직전에 방에 갇힌 밍이 속임수를 쓰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능력을 왜 갇힌 뒤에야 발휘하는 거지?

[라제기] 이 영화에 나홍진 감독이 얼마나 개입했을지도 궁금했어요. 원안은 나홍진 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태국의 무속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고, 이를 영상으로 옮긴 건 반종 감독일 테니까요.

[고경석] 큰 뼈대는 원안 그대로라고 하던데 그래도 저 역시 나 감독이 얼마나 개입했을지 궁금합니다.

[양승준] 님 역을 맡은 배우 싸와니 우툼마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묵직하면서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무당 역을 잘 소화했다고 봐요. 페이크 다큐란 장르에 어울리는 '일상의 얼굴'을 잘 찾아내지 않았나 싶어요.

[고경석] 님 역할의 배우는 유명 연극배우라더군요. 밍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너무 연예인 같아서 현실감이 떨어졌어요. 그래도 조금씩 귀신에 씌어 가면서 쇠약해지는 연기는 잘했어요. 배우의 정신건강이 걱정됐을 정도로.

[라제기] 님은 정말 캐스팅을 잘한 경우라고 봅니다. 평범한 듯한데 은근 신기가 있어 보여요. 밍은 의도적으로 신인을 캐스팅한 듯하고요.


별점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라제기] ★★★ 어느 매체가 '랑종'에 비하면 ‘곡성은 뽀로로 수준’이라고 제목을 썼는데, 과장이 심한 표현입니다. '겁쟁이 상영회'가 신의 한 수가 된 공포 영화입니다.

[고경석] ★★★ 단점도 많고 재미있는 측면도 있는 이중적인 영화였어요. 물론 전혀 다시 보고 싶진 않습니다.

[양승준] ★★★ 논리적 일관성은 아쉽지만, 기괴하고 이국적인 볼거리는 자극을 줬어요. 코로나 19로 위축되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고경석 기자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