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여행 중 뭘 먹을까? "풍성해진 메뉴판엔 김치도 있다"

입력
2021.07.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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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주식의 역사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두 거부는 과연 무엇을 먹고 우주의 경치를 즐겼을까? 지난 11일과 20일, 9일 차이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블루 오리진)와 리처드 브랜슨(버진 갤럭틱)의 이야기이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음식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제프 베이조스가 비행 직전의 식사를 놓고 "생전 마지막 끼니는 아니냐"라고 농담했다는 이야기만 나온다.

누구라도 호기심을 품을 미지의 세계 우주이지만 그 또한 배가 고프면 시시해진다. 따라서 우주에서도 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주식 말이다. '먹어야 산다', '밥 먹고 합시다', '금강산도 식후경'을 세 점으로 삼아 정삼각형을 그려 보자. 그 안쪽 영역이 바로 우주식 개발을 위한 기본 조건이다. 일단 생존은 기본에 지구와 다른 환경으로 나갔으니 임무 수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덤으로 인류 가운데 극소수에게만 열린 아름다운 경치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면 더 좋다. 결국 우주식도 영양은 필수이고 맛을 위시한 먹는 즐거움도 가능한 한 최대로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한다.

우주식 개발의 가장 큰 변수이자 걸림돌은 극미중력(microgravity)이 지배하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지구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요소를 원점에 놓고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 심지어 물이 80도까지만 올라가므로 설사 기기를 갖추더라도 지구에서처럼 복작복작한 조리는 불가능하다. 음식이 제자리에 가만히 머무르지 않고 떠다니기 때문에 식사는 노동에 더 가깝고, 따라서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식부터 다시 원점에 놓고 고민해야 한다.

한술 더 떠 음식이 먹는 인간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음식물 부스러기나 국물은 기계의 오작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사소한 오작동이라도 우주인 전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예방책으로 포장 등의 물리적 처리가 매우 중요하다. 한 입 크기 음식에 부스러기 통제를 위한 젤라틴 코팅이 도입되었다. 일반 음식은 튜브나 깡통, 플라스틱 파우치 등에 밀봉 포장한다. 액체는 특별 제작한 빨대와 뚜껑 등으로 흘러 나오지 않도록 막는다. 식기나 포장을 뜯기 위한 가위 등은 자석, 벨크로 등의 힘을 동원해 쟁반에 딱 붙인다.

우주식 특유의 포장 양식이 무게나 저장 공간 및 여건 확보와 맞물려 가공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행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가벼워야 하며, 한정된 전략 탓에 냉장고를 쓸 수 없으니 장기 상온 보관도 가능해야 한다. 가장 흔한 가공 방식은 탈수 또는 동결 건조다. 수분을 없애 무게와 부피를 줄이고 미생물 발생을 막는, 컵라면 건더기와 같은 원리다. 포장에 물을 주입하면 음식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한편 말린 과일이나 육포처럼 지구의 탐험식은 중간 정도 수분을 지닌 음식으로, 바로 먹을 수 있다.

열안정 음식은 열처리로 미생물이나 효소 등을 박멸하는 원리로 지구식의 레토르트 음식과 같다. 한편 쇠고기 스테이크나 훈제 칠면조는 같은 목적을 위해 전리 방사선으로 처리하는 음식의 대표적인 예다. 견과류나 쿠키 등은 지구의 상태 그대로 우주에서도 먹을 수 있다. 신선한 과일, 토르티야(멕시코의 밀전병) 같은 음식도 마찬가진데, 금방 부패하므로 보급 하루 이틀 내에 먹어야 한다. 우주 정거장에서 재보급이 이루어질 때 사기 진작을 위해 포함시키는 품목이다.

우주식 간략사

우주식의 연구와 개발은 미국의 머큐리 프로젝트(1959-1963)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전까지는 우주 비행이라고 해봐야 몇 분 수준이었으므로 딱히 음식을 먹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머큐리 프로젝트의 우주식은 '먹어야 산다'나 그럭저럭 만족시키는 수준이었다. 튜브에 담겨 빨대로 빨아 먹는 유동식, 압축 및 건조되어 입에서 침으로 불려 먹는 한입거리 식량의 형식으로 파인애플 주스, 쇠고기와 채소, 닭고기와 그레이비 등의 음식을 가공했다.

1965년의 제미니 프로젝트에서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일단 우주식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우주인들은 새우칵테일, 칠면조, 닭고기 크림스프와 버터스카치(태우기 직전까지 녹여 끓인 설탕에 버터를 더해 만든 걸쭉한 크림) 푸딩 같은 메뉴를 고를 수 있었다. 음식은 조리해 급속 냉동시킨 뒤 진공처리해 수분을 제거해 우주로 가지고 간 뒤 다시 물을 더해 먹는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착륙했던 아폴로 프로그램에서는 뜨거운 물의 보급이 돋보였다. 아무래도 찬물보다는 음식에 수분을 더 원활하게 보충할 수 있고, 온도가 높아 음식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한편 숟가락과 포크 등의 식기도 최초로 제공되어 튜브에 든 유동식과 작별을 고했다. 이에 맞게 탈수된 음식은 '스푼 볼(spoon bowl)'에 담겨 보급됐다. 수분을 보충한 뒤 지퍼를 열어 숟가락으로 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는데, 수분 덕분에 무중력 상태에서도 음식이 공중에 떠다니지 않고 용기에 달라 붙어 있어 먹기에 한결 수월했다.

1968년, 아폴로 8호가 지구의 궤도를 돌았을 당시에는 웻팩(wetpack) 형식의 우주식이 도입되었다. 신축성을 지닌 열안정 플라스틱 혹은 은박지 주머니에 이름처럼 적절히 수분을 품은 음식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우주인들은 콘프레이크 시리얼, 베이컨, 쇠고기 샌드위치, 초콜릿 푸딩 등을 즐길 수 있었다.

1973년의 스카이랩 프로젝트에서는 식탁이 딸린 식당 공간이 마련돼 우주식이라도 한결 더 편안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게 됐다. 이후의 우주왕복선에서도 없는 냉장고도 탑재되었으니 72종에 이르는 메뉴를 싣고 우주로 나갈 수 있었다. 한편 음식은 비행 중에도 가열이 가능한 트레이에 담아 비행 중에도 데워 먹을 수 있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우주왕복선의 시대가 찾아오자 우주식은 지구식과 거의 똑같아졌다. 우주인들은 74종류의 음식과 20종류의 음료 가운데 좋아하는 것을 골라 일주일치의 메뉴를 직접 짤 수 있게 됐다. 그런 우주식이 2006년에는 한 단계 더 발돋움했으니, 셰프가 짠 메뉴가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렸다. 유명한 TV 셰프인 에머릴 라가시의 매시드 포테이토(으깬 감자), 잠발라야(소시지와 새우 등을 넣고 지은 밥으로 미국 남부 전통 음식), 디저트인 브레드푸딩 등이었다.

셰프가 짠 훌륭한 메뉴와 음식이더라도 우주 식사는 여전히 노동이다. 중력의 부재는 식사 주체에게도 당연히 큰 영향을 미친다. 허리 아래쪽에 몰려 있던 혈액과 세포액이 위로 올라오니 코와 목이 부어 맛과 향을 느끼는 신경이 무뎌진다. 눈, 세반 고리관, 관절 등 감각기관과 뇌 사이의 혼란으로 평형감각을 잃어버려 생기는 우주비행 멀미도 영향을 미친다. 콜라, 맥주 등 탄산음료는 구토에 가까운 트림이 나오는 문제 때문에 시도는 했지만 정착에는 실패했다.

한편 영양소도 아주 적극적으로 조정해줘야 한다. 약해지는 뼈를 막기 위해 칼슘은 높이고 나트륨은 줄인다. 햇빛을 받지 못해 부족한 비타민D는 요구르트, 치즈 등의 유제품으로 보충해 준다. 심지어 최종 배설물의 굳기, 방귀의 빈도마저도 감안해야 하므로 동물 사료 전문가와도 협업한다. 요즘은 150가지 품목 가운데 열량, 개인 선호도 등에 맞춰 80종으로 개별 식단을 짜 2주에 한 번씩 돌린다. 미국의 경우 휴스턴 소재 존슨 스페이스 센터의 스페이스 푸드 시스템스 연구소에서 개발하고 비행 5개월 전에 비행사들로부터 평가를 받아 설계에 반영한다.

우주식은 아무래도 미국과 러시아 위주지만, 그 외 국적 우주인이 참여할 경우 자국 음식을 포함시킨다. 2003년, 중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양리웨이는 선저우 5호에 궁바오지딩(宮保鷄丁, 닭요리 궁보계정) 등의 메뉴를 탑재했고, 라바차는 우주정거장용 에스프레소 추출기(ISSpresso)를 개발해 사만사 크리스토포레티가 최초로 우주에서 갓 추출한 커피를 마시는 기록을 남기는 데 공헌했다.

2008년 이소연의 국제우주정거장 체류 시에는 러시아 우주식 위주에 한식도 간간이 섞어 보급되었다. 러시아 의생물학연구소로부터 최종 인증을 받은 한식 우주 식품 총 10종으로 4kg을 꾸렸다. 김치, 볶음김치, 고추장, 된장국, 밥, 홍삼차, 녹차, 라면, 생식 바, 수정과 등의 메뉴로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식품업체 연구소와 개발한 것이었다. 각각의 역할이 있었으니 식품연구원은 동결 건조와 고온 멸균 상태 포장, 원자력연구원은 전리방사선 멸균 식품을 맡았다.

한국인이라면 우주에서도 김치를 안 먹을 수 없는데 개발이 쉬운 식품은 아니다. 젖산 발효 탓에 맛이 계속 변하기 때문인데, 전리 방사선 처리로 발효를 멈추고 캔에 담고 내부에 특수 패드를 붙여 국물을 흡수시킨다. 한편 밥은 기존의 동결 건조식과 달리 찰기를 지키기 위해 고온에서 살균과 포장을 동시에 가능한 기술을 적용, 수분을 65%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둘 다음으로 가장 한국적인 음식인 라면은 우주의 조건을 감안해 면이 풀어지는 호화(糊化, 또는 겔화 gellification)가 지상보다 낮은 온도(70도) 및 시간(5분)에 가능하도록 개발했다.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