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는 다르다'고 말하는 과학은 '구분짓는 권력'이다

입력
2021.07.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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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남녀 차이' 연구의 위험성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회계약론', '에밀' 등의 저서를 남긴 프랑스의 교육학자이자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졌다. 한편 그가 대단한 성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철학자가 여성혐오자여서 그럴까?).

루소는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고 말했지만 그 '모든 인류'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오직 남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루소가 보기에 여성에게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진리를 파헤칠 재능이 없었다. 그는 여성의 자리를 가정으로 지정하면서 남성이 공직에 나가 일할 수 있도록 여성은 그의 옷을 바느질하고 집안일을 도맡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생물학적 차이가 정한 여성의 역할

고대 자연철학 전통에서 여성은 남성의 불완전한 버전이었다. 곧 여성은 남성과 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기보다는 같은 종류지만 더 열등한 존재였다(2월 20일자 '남성이 지배해온 과학사, 자궁은 2,000년간 이름조차 없었다' 참조).

오늘날처럼 두 가지 성이 있다는 생각은 18세기 중엽 이후에서야 등장하였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성적 상보성 이론'이다. 루소는 대표적인 상보주의자였다. 성적 상보성 이론은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있고, 서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이때 여성에게 주어진 '보충하는 역할'이란 곧 출산과 육아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재생산에 더 적합하기에 학습과 추론이 필요한 일에는 남성보다 유능하지 않다는 것이 성적 상보성 이론의 요지였다. 곧 여성은 과학과 정치와 같은 공적인 활동에는 어울리지 않고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르다'는 관념이 빼앗은 기회

고대 자연철학이 대놓고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그렸다면 근대에 성립된 성적 상보성 이론은 좀 더 교묘했다. 이 이론은 여성과 남성이 도덕적, 신체적으로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로 그린다. 이 이론은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남성과 근본적으로 달라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며, 공적이고 합리적인 남성과는 달리 사적이고 다정한 존재라고 말한다.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가 아닌지?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릅니다. 다르니 그것을 인정하고 사이좋게 인정하고 지냅시다. 페미니즘 말고 이퀄리즘!"

상보성 이론은 여성이 공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공적인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이론은 여성과 남성이 다르다고 말하면서,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교육, 정치 참여, 지식 생산의 기회를 앗아갔다. 이전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고 불완전하다고 말하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여성이 남성과는 다르다고 말하며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18세기에 여성에게 주어진 미덕은 모성애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는 데 있었다. 이 때문에 여성은 이후 민주주의가 도래한 사회에서도 어머니이자 양육자라는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성적 상보성 이론은 자유민주주의 사상에 모순되지 않으면서도 남녀의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여성이 벗어나서는 안 되는 사회적 위치까지 지정했다. 여성에게 걸맞은 사회적 위치란? 바로 가정이다.

차별의 정당화 수단이 된 과학

당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성적 상보성 이론을 정당화하는 성차에 관한 해부학, 생리학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골상학이 대표적이다. 성차를 구분하는 최초의 기준은 골격으로, 여성의 골격을 남성의 골격과 다르게 그린 해부학 교과서가 18세기 중엽 등장했다.

당시 해부도를 보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작은 머리, 좁은 어깨, 넓은 골반을 가졌다. 해부도를 살피며 학자들은 여성이 남성과 아동의 중간에 있는 존재라고 말하며 여성 골격의 많은 부분이 아동이나 '열등'한 인종의 골격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곤 했다.

영국 인류학자 제임스 맥그리거 앨런(James McGrigor Allan)은 1869년 논문 '남녀 정신의 진정한 차이에 대하여(On the Real Differences in the Minds of Men and Women)'에서 여성의 뇌는 동물의 뇌와 비슷하며 내부의 감각기관은 정상적인 뇌를 침식하면서 과하게 발달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것이 여성이 남성보다 이성적이지 못하며 감각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준다고 믿었다.

열등성의 근거가 골격? 뒤에 도사린 목적은

골격을 통해 열등성을 입증하려는 연구는 여성에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백인과 흑인의 두개골을 비교하는 연구 역시 활발했다. 턱의 모양, 안면 각도, 골격과 척추 사이의 각도, 골격의 모양 등 두뇌에 관련된 지표는 19세기 내내 엄청나게 증가했다. 인류학자들은 두개골학과 뇌 측정 수치에서 사회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는 증거를 얻으리라 생각했다. 여성운동이 노예제 반대운동과 마찬가지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18세기 중반에 나타나 20세기 초까지 이어지며 학계에서 적극적으로 채택되다가 점차 비과학적이라 판명되어 마치 과학의 역사에서 애초에 없었던 일처럼 사라졌다. 당시 과학자들은 말했다. 우리는 편견을 가진 것이 아니며, 단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객관적'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 과학은 지나간 역사를 배우지 않는 학문이다. 그러나 흘러간 과학을 되돌아보면 오늘날 과학의 합리성, 객관성과 같은 가치를 성찰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공적 분야에서 여성의 성취가 적다는 이유로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똑같은 논리로 유색 인종이 백인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말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굵직한 자리를 차지한 압도적 대다수는 백인 남성이었으니까.

과학과 권력 사이의 상호작용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강조하는 연구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면 이 같은 연구 결과가 사회의 고정관념에 들어맞기 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성은 성적으로 더 활발하고 공격적이며 분노하기 쉽고 수학, 과학 능력이 더 뛰어나달지, 여성은 더 조심스럽고 공감 능력과 의사소통에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 따위 말이다.

차이에 관한 연구는 그 차이가 권력과 관계있을 때 탐구하기 흥미롭다. 한쪽 집단이 나머지 다른 집단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는 주목할 만한 관심사가 된다. 역사적으로 인간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에 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한 때는 나치 정권 아래에서였다. 그러므로 차이를 강조하는 주장을 맞닥뜨릴 때면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저쪽과 우리 쪽을 구분 짓기 위해서? 구분 지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차별주의자들은 성차별적인 과학 이론을 앞세워 여성에게는 원래 능력이 부족하고 공적인 자리에 어울리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지금도 여전히 여성 우울증의 원인을 사회·경제적 환경보다 여성호르몬에서 찾고, 컴퓨터공학이나 금융업 같은 고임금 직종에 여성이 적은 건 직무와 여성의 능력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쉽게 접한다. 현실에서는 이미 여성이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오히려 제도가 그것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여성의 지적 열등함에 관한 연구는 이렇듯 현실과 부합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계속될 것이다.


하미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