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감. 인도네시아 야생에서 직접 맞닥뜨린 수마트라코끼리와 코모도왕도마뱀은 동물원에 갇힌 녀석들과는 사뭇 다르다. 생동하는 눈동자와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공경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취재하는 내내 가슴이 뛴다. 그들도 대자연에 공존하는 이웃임을, 자유 속에 빛을 발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야생에 있지만 좀체 볼 수 없는 동물도 많다.
7,000여 가지 동물(곤충 제외)이 서식하는 인도네시아는 멸종위기동물만 787종(2018년 기준)에 달하는 희귀 동물의 보고(寶庫)다. 법으로 최우선 보호되는 25가지 중 인도네시아가 각별히 아끼는 10가지 희귀 동물을 소개한다. 현존 개체수는 가장 최근인 2019년 환경산림부가 1년간 야생에서 직접 실체를 확인한 수치를 인용한다. 충격일 만큼 그 수가 적다.
인도네시아어로 '숲(utan 또는 hutan)에 사는 사람(orang)'을 뜻한다. 수마트라섬과 칼리만탄(보르네오)섬에만 살고 있어 인도네시아를 대표한다. 어미를 죽이고 새끼를 포획해 애완용으로 밀수하거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인간들 때문에 오랫동안 시련을 겪고 있다. 게다가 번식력이 떨어져 암컷 오랑우탄은 평생 3마리의 새끼만 낳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랑우탄은 세 종류다. 보르네오(칼리만탄)오랑우탄은 2,316마리가, 수마트라오랑우탄은 230마리가 야생에 있다. 수마트라 북쪽 바탕토루 밀림이 보금자리인 타파눌리오랑우탄은 2017년 세상에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100년 만에 나타난 가장 희귀한 유인원'이란 별칭을 얻었으나 개체수가 800마리도 안 돼 발견되자마자 멸종 위급에 빠졌다. 중국 업체가 인근에 짓는 수력발전소도 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유령(hantu) 원숭이(monyet)라는 뜻으로 싱아푸아르(singapuar)라는 이름이 현지에선 더 많이 쓰인다. 몸길이 약 12~15㎝, 몸무게 약 80~140g밖에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다. 모든 포유류 중에서 몸길이 대비 가장 큰 눈을 가졌다. 커다랗게 튀어나온 눈알 한 쌍이 뇌보다 크다. 눈알 하나 무게가 뇌 전체 무게와 같다. 눈의 해부학적 구조와 먹이 감지 감각 등은 올빼미를 닮았다.
목을 360도 회전시킬 수 있는데 마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칼리만탄 일부 원주민은 토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108마리가 남아있다.
이름처럼 뿔(cula)이 하나(satu)인 코뿔소(badak)다. 몸길이 3m, 몸무게는 2톤이나 나가며 수컷 코뼈 위에 약 15㎝ 길이의 뿔이 1개 있어 외뿔코뿔소 또는 일각코뿔소라고도 불린다. 장식용 또는 한약재로 뿔을 탐하는 밀렵꾼들 때문에 수없이 죽었다. 10마리가 생존했던 베트남에선 2010년 멸종됐다.
오직 자바섬 서쪽 끝 우중쿨론(ujung kulon)국립공원에만 73마리(수컷 40, 암컷 33)가 남아있다. 새끼 두 마리는 올 초 공원 폐쇄회로(CC)TV에 잡혀 출생이 확인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바코뿔소의 마지막 은신처를 수호하기 위해 우중쿨론반도를 1958년 자연보호구역으로, 1980년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자연공원(1991년)이기도 하다.
자바코뿔소와 몸매는 비슷하나 이름처럼 아시아 코뿔소 중 유일하게 뿔이 두 개(dua)다. 현존하는 코뿔소 5종 중 가장 작으며 특이하게 긴 털을 가지고 있어 멸종한 털코뿔소(woolly rhino)와 더 가깝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지난 20년간 개체수가 70% 급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야생 개체수는 21마리다. 뿔 밀렵과 서식지 파괴 때문이다. 더구나 암컷은 규칙적으로 짝짓기를 하지 않으면 자궁에 종양이 생겨 개체수가 적을수록 번식이 힘들어지는 특성이 있다. 2019년 말 마지막 수마트라코뿔소 암컷 이만이 숨지면서 말레이시아에선 멸종됐다.
이 땅에선 '자바(jawa) 독수리(elang)'라 부른다. 몸길이 56~60㎝, 날개 편 길이 110~130㎝로 쫑긋 세울 수 있는 긴 머리깃이 특징이다. 자바 텃새로 해발 500~2,000m 원시림에 주로 깃들인다. 인도네시아 국장(國章)에 그려진 힌두 신화 속 '새들의 왕' 가루다도 자바뿔매를 본떴다. 가루다 국장은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이 1950년 2월 15일 처음 공개했다. 1992년 인도네시아 멸종위기동물의 마스코트로 지정됐다. 야생에 97마리가 있다.
수마트라 남쪽 벨리다강에 많이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디언이 쓰는 칼 모양에 빗대 인디언 나이프피시(knifefish)라고도 한다. 악마를 죽이기 위해 칼처럼 태어났다는 힌두 신화도 전해진다. 몸무게는 1㎏, 몸길이는 87.5㎝에 달한다. 식용과 관상용으로 남획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 벨리다 물고기로 만들던 전통 튀김 어묵 요리 펨펙(pempek)의 주재료가 틍기리(tenggiri)라는 다른 물고기로 바뀌었을 정도다. 개체수는 집계되지 않았다.
생김새마냥 이름에 사향고양이(musang)이라고 밝혔지만 사향고양이과에서 분리된 린상과의 야행성 육식동물이다. 수마트라의 서쪽 산맥과 북쪽 아체에서만 볼 수 있다. 몸길이 약 71㎝, 몸무게 5㎏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다 사냥할 때만 땅으로 내려오는 습성 탓에 개체수 파악이 쉽지 않다.
수마트라호랑이는 아무래도 살인 사건이 부각된다. 2019년 11~12월 수마트라 남부에서 발생한 호랑이와 인간의 충돌은 15건, 사람만 7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러나 수마트라호랑이가 처한 상황은 약자에 가깝다. 삼림 벌채 및 영역 침범, 밀렵 등으로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야생에서 122마리만 실체가 파악됐다. 형제뻘인 자바섬의 자바호랑이는 같은 이유로 1970년대에 멸종됐다.
인도네시아 고유종인 아노아 물소는 술라웨시섬 열대 우림에 주로 산다. 일찌감치 희귀 야생 동물로 분류돼 1931년부터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특히 가죽, 뿔, 고기를 탐하는 사냥 탓에 1960년대 이후 멸종 위기에 처했다. 야생에선 62마리만 발견됐다.
코모도국립공원에 2,932마리가 있다. 언뜻 악어처럼 보이며 거친 비늘로 둘러싸인 몸길이 평균 3m, 몸무게 100㎏ 안팎의 기괴한 풍채를 과시한다. 넓이 2m, 깊이 1m짜리 구멍을 위장용으로 여러 개 뚫어 한 곳에 둥지를 만든다. 새끼 때는 적을 피해 나무 위에 살지만 약 8개월이 지나면 땅에 정착해 사슴 멧돼지 물소 등을 닥치는 대로 먹는다. 침에 유독한 세균이 많아 물리면 패혈증에 걸려 서서히 죽게 된다.
이 밖에 멸종 위기 희귀 동물로 △송곳니가 4개인 멧돼지 바비루사(babi rusa·사슴돼지) △코끼리·곰·멧돼지·코뿔소 등을 섞은 듯한 말레이언테이퍼(말레이맥) △코가 사람 같은 코주부원숭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새로 불리는 카수아리(화식조) 등이 있다. 언급된 15가지 중 10가지 동물은 자카르타 인근 보고르의 타만사파리(사파리공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