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기온이 30도가 넘는 폭염이 지속되며 ‘외출 자제령’이 내려졌지만 오히려 일이 늘어난 사람들이 있다. 음식 배달기사들이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폭염이 겹쳐 배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배달기사들은 숨 막히는 더위에도 쉬지 못하고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몰렸다.
20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조치가 시행된 이달 12일부터 일주일 동안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등 배달앱 주문건수는 전주 대비 15~20% 증가했다. 방역 조치가 강화된 상황에서 폭염까지 이어지자 외출 대신 집이나 사무실에서 배달을 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배달앱들도 무더위를 고려해 여러 대비책을 내놓았다. 배달의민족은 기온이 33℃가 넘으면 배민라이더에게 ‘폭염수당’ 1,000원을 얹어준다. 요기요는 배달기사들에게 쿨 토시를, 쿠팡이츠는 생수를 지급했다. 하지만 더위가 절정인 한낮에 실적을 체크하니 배달기사 입장에선 가장 힘든 시간에 일을 쉴 수도 없다.
배달기사들은 폭염 속 배달해야 하는 고통을 ‘불지옥’에 빗댔다. 한낮 아스팔트 도로 열기는 약 50℃. 게다가 두꺼운 헬멧과 마스크로 인해 열이 제대로 식지도 않는다. 한 배달기사는 “아스팔트 위는 자동차가 뿜는 열기까지 더해져 불지옥이 따로 없다. 헬멧을 벗으면 머리가 펄펄 끓어 돌아버릴 것 같다”며 “휴게 장소도 없고 배달 압박 때문에 숨 돌릴 틈도 없다”라고 말했다.
주문을 거절하기 어려워진 환경도 이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배달기사들은 ‘개인 사업자’로 플랫폼 기업에 특수고용된 형태인데, 최근 들어 평점을 매겨 배달 비용을 다르게 주거나, 좋은 주문을 배정해주지 않는 등 차등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쿠팡이츠는 그동안 날씨, 거리에 따라 배달료를 측정해왔다. 하지만 6월부터는 ‘쿠팡이츠 리워드 프로그램’을 실시해 △배달 완료율 △피크 시간대 참여율 △배달 완료율 등을 체크해 배달기사의 등급을 매긴다. 배달의민족도 경기 성남시 등 일부지역에서 ‘AI 추천배차 수락률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피크 시간대에 일정 정도 이상의 수락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조건으로 걸었다. 주문이 몰리는 피크 시간대를 기준으로 삼은 게 공통점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 플랫폼이 ‘라이더 모시기’에 나선다고 하는데, 실상은 경쟁적으로 ‘일 시키기’에 돌입한 것”이라며 “최근 실시하고 있는 프로모션들은 사실 수락률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아 라이더들이 폭염에도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