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걸 무서워해요.”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육진흥원(보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이용 불편ㆍ부정 신고센터’에 민원이 접수됐다. 경남 진주의 한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긴 A씨의 호소였다. 자녀가 등원을 거부하는 사정을 알아 보니, 교사가 수시로 손찌검을 하고 ‘사이코’라고 부르는 등 신체적ㆍ언어적 학대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원장에게 항의했으나 “그럴 리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 어린이집 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복지부 조사에서 교사의 학대는 사실로 확인됐다.
더욱 기가 막힌 건 학대 행위가 알려지기 전 진행된 보육진흥원의 평가 결과였다. 문제의 어린이집은 “영유아를 존중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를 받았다. 보육진흥원은 복지부를 대신해 어린이집 평가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보육진흥원이 실상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린 배경에는 허술한 평가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었다. 감사원이 20일 공개한 감사보고서를 보면 보육진흥원은 어린이집 현장 평가를 할 때 방문일을 미리 알린 뒤 찾아가 일과 시간에 고작 한 번 날림 관찰했다. 당연히 ‘부정평가’ 기준인 원생에 대한 욕설과 체벌 등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영유아 존중, 보육교직원 존중과 같은 긍정 평가는 98.5~99.9%에 달했다. 아동학대가 발생하거나 원장이 보육교사에게 무급휴가를 강요하는 등 비위 행태가 잦아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애초에 보육진흥원은 평가 점수를 크게 좌우하는 ‘이용자 만족도’를 평가 항목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2018년 12월 ‘영유아보육법’ 개정에 따라 이용자 만족도 조사가 신설됐지만, 평가 척도를 개발하지 않은 탓이다.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 일부 어린이집도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아 부모들이 솔직한 답변을 꺼리는 형편이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부모 만족도 조사가 표준화되지 않아 객관성ㆍ공정성 확보가 어렵고, 불이익을 우려한 답변으로 신뢰성이 우려된다”며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근절되지 않은 만큼 평가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어린이집 평가 시 이용자 만족도를 필수 반영하는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보육진흥원장에게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