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은 그리움과 동의어이자 추억의 다른 이름이다. 국어사전은 간이역을 ‘역무원이 없고 정차만 하는 역’으로 정의하지만 마음속 간이역은 한적하고 정겨운 시골역이다. 역무원이 있더라도 열차가 띄엄띄엄 서는 역, 열차가 다니지만 서지 않는 역, 선로 이설로 아예 열차 운행이 중지된 역까지 모두 간이역이다. 중앙선과 충북선에 남아 있는 간이역을 소개한다.
중앙선에는 선로 이설로 더 이상 열차가 다니지 않지만 주목받는 역이 있다. 2012년 문을 닫은 양평 지평면의 구둔역은 요즘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건축학개론’을 비롯해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했고, 최근에는 BTS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으로도 알려져 폐역이 된 후 더 유명해졌다.
1940년에 지은 역사 뒤편으로 나가면 선로 한쪽에 오래된 전동차 2량을 설치작품처럼 얹어 놓았다. 남겨진 철길을 걸으며 사진 찍기에 좋은 소품이다. 느티나무 아래 놓인 길쭉한 ‘거울 의자’와 붉은 벽돌 담장을 두른 ‘고백의 정원’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추억의 옛날 사진을 전시한 대합실은 코로나19로 현재 들어갈 수 없는 상태다.
구둔역에서 지평역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석불역이다. 청량리에서 동해까지 가는 강릉선과 안동이 종착역인 중앙선 열차가 각각 2회 정차하는데, 새로 지은 건물 외관이 눈길을 잡는다. 작지만 빨간 지붕과 파란 벽면의 원색 대비가 단숨에 눈길을 잡는다. 창문 발코니는 작은 화분으로 장식해 동화 속 삽화 같다. 장난감 블록으로 쌓은 미니어처처럼 앙증맞은 역이다. 옛 역사 부근에 석불이 있어서 붙은 지명이라 한다.
양수리 인근 남양주 조안면에도 폐역이 남아 있다. 양수리에서 팔당댐으로 이어지는 옛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능내역 표지판이 나온다. 현대식 카페와 식당이 자리 잡은 골목으로 몇 발짝만 들어가면 갑자기 시간을 수십 년 되돌린 듯 빛바랜 건물이 등장한다.
건물 내부에는 철길과 대합실을 배경으로 찍은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 아련한 옛 시절로 시간을 되돌린 듯하다. 역사 앞에는 짧게나마 선로를 남겨 놓았다. 지하철과 고속열차에 익숙한 세대에게 복고 감성을 자극하는 풍경이다. 자전거 여행자의 쉼터이자 세대 간에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제천 봉양역은 2016년 문을 닫았다가 올해 중앙선 복선 개통 이후 영업을 재개한 특이한 경우다. 그럼에도 제천역과 가까워 정차하는 열차는 많지 않다. 충북선과 중앙선을 합쳐 상ㆍ하행 열차가 각각 5회 정차한다. 1944년 준공한 단아한 붉은 벽돌 건물만이 화려했던 옛 시절을 증언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공전역은 2008년 문을 닫은 후 목공체험장 ‘우드트레인’으로 변신했다. 나무로 만든 다양한 팝아트 작품과 기념품도 판매한다. 선로 건너편 공전마을엔 낡은 건물을 활용해 옛날 역전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공전역에서 기찻길로 2km 떨어진 삼탄역은 충주에서 가장 외진 곳 중의 하나다. 공전역과 삼탄역 사이는 제천천 물길이 천등산(806m) 자락을 휘어 도는 지형으로, 바로 가는 길이 없어 차로는 20km를 돌아야 한다. 공전역에서 선로가 터널로 진입하는 철교는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나 돌아갈래”라고 외친 곳이다. 개봉한 지 20년도 넘었으니 영화도 이미 추억이다.
터널을 빠져 나와 강 언덕에 자리한 삼탄역 주변은 시골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좁은 역 마당의 공중전화 부스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숲속 도서관’으로 변신했고, 강 주변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역에서 나오면 최근 야영장으로 더 널리 알려진 삼탄유원지다. 삼탄은 마을을 감싼 강줄기에 있는 3개의 맑은 여울(광천소 여울, 소나무 여울, 따개비 여울)을 의미한다.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 하는데 정확한 지점은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