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명. 테워드로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최근 밝힌 청력이 손실돼 듣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세계 인구수입니다. 상당수 청각장애인에게 소리는 일상을 가로 막고 서 있는 벽이 되기도 합니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이 아는 게 싫어 밖에서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청소년도 있다고 합니다.
음악을 듣는 게 아닌 다른 감각으로 바꿔 그 즐거움을 청각장애인들에 전할 수는 없을까요. 그룹 방탄소년단이 이 시도에 첫발을 뗐습니다. 지난 9일 공개된 신곡 '퍼미션 투 댄스'를 통해서입니다. 방탄소년단은 국제 수어를 춤에 녹였습니다. '퍼미션 투 댄스'는 "넘어져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 착지하는 법을 아니까"라며 역경을 함께 딛고 춤을 추자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곡의 메시지를 살리기 위해 방탄소년단이 수어를 활용한 안무로 소리를 시각화해 청각장애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마련한 겁니다.
방탄소년단이 수어로 표현한 동작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왼손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움직이는 '춤추다'와 엄지손가락을 펴고 나머지 손가락을 반쯤 구부린 채 몸을 긁는 듯한 동작의 '즐겁다' 그리고 두 손이나 팔로 'V'자 모양을 만드는 '평화' 입니다.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들은 노래를 부르며 모두 이 동작을 표현합니다. 빅히트뮤직 관계자는 "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습니다. 팬데믹으로 지친 세계 시민에 희망을 주는 노래를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안무에 수어를 활용했다는 얘깁니다.
방탄소년단의 수어 활용에 청각장애인들은 크게 반겼습니다. 필리핀에 사는 대학생 청각장애인은 '퍼미션 투 댄스' 속 수어 안무를 보고 "평생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수어로 된 방탄소년단 춤을 보고 내가 특별하고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청각장애인들이 이 수어 춤을 따라 추는 영상이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SNS에 글을 올려 "청각이 손실된 세계 15억 명에 삶에 활력이 되는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고 했습니다.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장벽을 낮춰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수어 안무는 어떻게 제작됐을까요.
방탄소년단은 희망을 줄 수 있는 '평화' '즐겁다' 등의 단어를 먼저 정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국제 수어를 택했습니다. 사는 지역에 따라 언어가 갈리듯 나라마다 수어도 다른데, 국제 수어가 더 많은 청각장애인이 알아 볼 수 있는 수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수어통역사협회 관계자도 "국내에 등록된 청각장애인수는 약 30만여 명"이라며 "국제 수어도 배워야 알 수 있지만, 세계 더 많은 청각장애인을 위해선 국제 수어를 활용하는 게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수어 작업엔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빅히트뮤직 관계자는 "여러 수어 전문가와 수 차례 논의하면서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습니다. 수어를 활용한 춤 동작을 뮤직비디오 공개 전 청각장애인들에 극비리에 보여준 뒤에 그 의미가 잘 전달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도 이뤄졌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수어 동작이 오류 없이 청각장애인들에 자연스럽게 전파된 배경입니다.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는 19일 기준 조회수 1억 7,000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를 인천 영종도 을왕산 인근에서 촬영했습니다. 흙먼지 날릴 법한 벌판에서 카우보이 차림으로 '춤을 추다'란 뜻의 수어로 춤을 췄습니다.
수어 안무에 대한 높은관심 덕분일까요. 빌보드는 19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이 '버터'의 바통을 이어받아 '퍼미션 투 댄스'로 인기곡 주요 차트인 '핫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9월 '다이너마이트'(3주)를 시작으로 '새비지 러브' 리믹스(1주) '라이프 고스 온'(1주) '버터'(7주)에 이은 다섯 번째 1위 곡입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1987~1988년 엘범 '배드'수록곡으로 세웠던 9개월 2주간 5곡 1위 이후 최단 기록이라고 합니다.
방탄소년단 멤버인 RM은 최근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수어 춤 동작에 대해 "즐거운 작업이었고, 감동하셨다는 분들도 있어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러브 유어셀프' 세계 순회 공연 때도 수어 통역사를 불러 공연 통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즉 음악을 느끼는 장벽을 일부 낮춘 방탄소년단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