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청와대 게시판에 '베트남 호찌민에서 11세 아들과 사는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오른 청원글의 일부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17만 한국 교민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는지, 그 절박함이 여실히 담겨 있는 글이다. 실제로 전날 베트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3,705명으로, 또다시 일일 확진자 수 최고 기록을 세웠다. 호찌민 등 주요 감염 지역 시민들의 외출은 열흘째 금지 상태다. 응급 상황이나 식료품 구매를 위한 외출이 아니면 즉시 체포되거나 벌금을 물어야만 한다.
베트남 현지 교민들은 고국에 읍소하는 것과 동시에, 현지에서 백신을 자체 수급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선 베트남 정부가 진행 중인 백신 구매자금 모금 운동에 호찌민 한인회 등이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교민 개개인이 휴대폰으로 2만 동(한화 1,000원)을 보내는 방식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베트남 당국의 노력에 한국 교민들도 적극 동참한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호찌민 한인회 관계자는 "한국이 베트남의 최대 외국인직접투자국가라 해도, 자국민용 백신도 부족한 상황에서 '배려'를 부탁하는 건 한계가 있다"며 "최소한의 명분을 확보해 교민들을 위한 소량의 백신이라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날도 교민사회 위기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의 백신 수급 상황도 어려운 데다, 보낼 물량이 있어도 베트남에서 안전하게 교민들에게 접종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기술적 어려움과는 별개로,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현지인을 배제하고 한국인들한테만 백신을 공급하는 건 한국의 외교 철학과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과 중국, 프랑스처럼 자국민만을 위해 별도 백신을 '핀셋 공급'하는 건 인류애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날도 교민들 피해는 계속됐다. 호찌민의 경우, 한국인 2명이 중앙열대병원과 쩌마이병원의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문제는 과포화 상태인 현지 병원이 외국인 치료엔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은 중증 환자를 한국으로 이송할 응급용 비행기 운항을 준비하고 있으나, 비행편이 마련되더라도 변수는 여전하다. 개인이 부담할 이동 비용이 1억 원 이상인 데다, 베트남 보건당국이 환자 해외 이송을 허용할지도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합병증 의심으로 15일 현지 병원에서 숨진 한국 교민 A(58)씨 유해를 베트남 보건당국이 이튿날 일방적으로 화장한 사실도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통상의 외국인 사망 통보 절차를 거치지 않은 탓이다. A씨 유해는 이르면 21일 한국에 도착할 전망이다. 대사관과 호찌민 총영사관은 이날도 중앙정부와 보건당국 등에 "한국인 화장 사태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한국인 인명 보호와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거듭 항의했다. 베트남 정부 측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확진자 폭증에 신음하는 병원의 과실일 뿐, 정부 측의 고의나 방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통제되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에 베트남 정부는 19일 자정부터 수도 하노이와 16개 지방성의 방역정책을 한 단계 더 강화한다. 호찌민과 마찬가지로 외교 및 의료 등 필수 업종 근무자들을 제외한 인원의 출근과 외출이 통제된다. 외부에서 5인 이상 집합 역시 금지되며, 대중교통 또한 절반만 운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