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일본의 외교차관이 4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후 가속화하는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에 속도를 붙이기 위한 만남이지만, 각국의 표정이 밝지는 않다. 한일관계가 갈수록 꼬이면서 3국 협력을 가로막는 ‘상수’가 돼 가고 있는 탓이다. 중재역을 자처해 온 미국의 역할이 주목되는 배경이다.
16일 외교부에 따르면 최종건 1차관은 21일 일본 도쿄에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森健良)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한미일 외교차관협의를 갖는다. 외교부는 “세 나라의 공동 관심사를 논의할 계획”이라고만 밝혔을 뿐, 세부 의제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미일 외교차관협의는 2017년 10월 딱 한 차례 열린 게 마지막이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해 상대적으로 한미일 동맹을 등한시해 온 만큼 도쿄 회동에서 느슨해진 3국 협력의 끈을 조이겠다는 게 미국의 구상이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걸림돌이다. 과거사 문제를 놓고 악화할 대로 악화한 양국의 앙금을 털어내야 중국을 견제할 안보 대응책을 논의할 수 있는데, 미국이 내놓을 뾰족한 카드가 별로 없다. 갈등의 핵심인 과거사 이슈에 직접 개입하자니 한쪽이 반발할 게 뻔해 섣불리 중재안을 꺼내기도 어렵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역할은 3국 협력 복원을 위해서라도 두 당사국이 변화 의지를 보여달라는 물밑 압박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동이 도쿄올림픽 개막(23일)을 이틀 앞두고 열리는 점도 변수다. 우리 정부는 이날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못했다. 한일정상회담 등 관계 개선 의지를 가늠하는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한국 측 요구를 일본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서다. 회동 전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을 결정하면 한일 간 책임 공방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커 모처럼 개최되는 3국 협의의 의미도 퇴색될 것으로 보인다.
최 차관은 방일 기간(20~21일) 모리 차관과 별도 양자 회담도 갖는다. 강제동원ㆍ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더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해제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처리수) 배출 등 다양한 현안을 놓고 폭넓게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다만 하나 같이 양측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접점을 찾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셔먼 부장관은 23일엔 서울을 찾아 최 1차관과 제9차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연다. 한미정상회담 후속 조치와 북미대화 재개 방안 등 한반도 의제가 중점 논의 대상이다. 당초 셔먼 부장관의 순방(18~25일) 일정에 중국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무부 발표에서는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