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얼마면 되겠니"... 억 소리 나는 대선, 막오른 '쩐(錢)의 전쟁'

입력
2021.07.17 19:00
TV 광고 등 홍보, 유세, 여론조사 등
대선 후보당 400~500억 원은 기본 
‘차떼기’ 흑역사에 정치자금법 개정 
펀드, 대출로 모금… '짠순이' 선거도 
결국 세금 "돈값 하는 후보 뽑아야"

"평생 직장인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모두 사비를 써야 하니까 금전적으로 힘드네요." (2017년 1월 16일 반기문 전 유엔총장, 마크맨 기자들과의 '치맥 회동'에서)

2017년 보수진영의 '꽃가마'를 타고 야심 차게 대선 행보를 시작한 반기문 전 유엔총장. 화려했던 출발과 달리 불과 20일 만에 스스로 대권의 꿈을 접었는데요. 반 전 총장의 발목을 잡은 건 '돈'이었습니다. 반 전 총장은 지방 민심 투어 중, 마크맨 기자들에게 '돈 없어서 힘들다'고 털어 놓을 만큼 금전적 압박감을 호소했죠.

귀국 후 그가 보름 남짓 쓴 돈은 어림잡아 하루 1,000만 원. 최소 2억 원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딱히 흥청망청 쓴 것도 아니에요.

자신과 아내 유순택 여사가 타고 다니는 국산차 2대 구입비 7,000만 원. 서울 마포의 한 주상복합빌딩에 집무실, 캠프 사무실 보증금과 월세로 3,400만 원, 여기에 운전기사, 수행비서 월급, 캠프 사무실 운영비까지. 대선 캠프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 비용만 계산했는데도 이렇게 '억' 소리가 났습니다.

더욱이 반 전 총장은 소속 정당이 없었기에, 이 모든 비용을 오롯이 사비로 감당해야 했으니 너무나도 비싼 정치 수업료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겠죠. 결국 반 전 총장은 대선 도전을 포기합니다.

반 전 총장의 사례가 말해주듯,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를 뽑는 대선엔 '표(票)'만큼 '돈'도 많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5,000만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치 비전과 경쟁력을 제대로 선보이기 위해선 '실탄'부터 두둑하게 챙겨놔야 하니까요. 도대체 어디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냐고요? 대선 경선부터 본선까지, 각 레이스마다 돈이 안 들어가는 데가 없습니다.



유엔총장도 포기하게 한 '돈' 대선, 어디에 그렇게 쓰나

일단 대선 출마에 도전하기 위해선 일종의 '입장료'인 기탁금부터 내야 합니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려면 예비경선 1억 원, 본경선 3억 원 등 총 4억 원을 내야 했는데요.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단일화로, 컷오프 직전 스스로 물러난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TV 토론회 한 번과 국민 면접 한 번만 치르고 1억 원을 쓴 셈이죠. 여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내는 기탁금 3억 원은 또 별도입니다.

아까 기탁금은 입장료라고 말씀드렸죠? 본선에 들어가면 더 어마어마해집니다.

가장 큰 씀씀이를 자랑하는 건, TV 광고인데요. 주요 채널에 다 내보내려면 100억 원에서 150억 원 정도가 들고요. 요즘 대세인 온라인 홍보 비용 역시 50억 원에서 80억 원으로 만만치 않죠.

전통적인 홍보 방식인 선거 공보물도 한 번 전국에 배포하는데 5억 원. 거리 유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형 LED(유기발광다이오드) 화면과 확성기가 장착된 1톤 유세 차량은 대여 비용만 2,000만 원대. 5톤은 4,000만 원으로 비싸집니다.

로고 송은 한 곡당 200만 원 정도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보통 후보당 20곡 남짓을 사용하니, 적어도 5,000만 원은 잡아 놔야겠죠. 여기에 선거사무소 운영비에 여론조사 비용까지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파이는 역시 인건비입니다. 선거운동원 및 캠프 운영 인력 인건비만 100억 원이 넘게 드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전국 단위로 사람들이 움직이니 대선 한번 치르면 대한민국 경제가 들썩일 수밖에 없겠네요.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대통령, 얼마면 되겠니." 5년마다 억 소리나는 '쩐의 전쟁' 속으로 한번 들어가서 확인해보시죠.



사과박스는 하수, 트럭을 통째로… '차떼기' 흑역사

대선, 그리고 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 기억나시죠. 바로 차떼기입니다. 순간 뜻이 가물가물해 한번 찾아봤는데요.

"화물차 한 대분의 상품을 한꺼번에 사들이는 일. 또는 그렇게 하기 위한 흥정"이라 나오네요. 트럭에는 보통 농산물 등 물건을 싣기 마련이죠. 그런데 정치권은 역시 스케일이 남다릅니다. 트럭 한 대를 현금 다발로 가득 채워 그걸 통째로 받아갔으니 말이죠.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기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서 삼성, LG, 현대차 등 굴지의 대기업들로부터 불법 대선 자금을 줄줄이 받았던 그 차떼기 사건, 맞습니다.


당시 검찰 수사로 밝혀진 내용을 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데요.

금권선거의 새 지평을 열었던 LG그룹 사례를 볼까요. 당시 LG그룹은 상속 문제에 대비해 조성해둔 비자금 중 150억 원을 이 후보 측에 전달했는데요. 2억4,000만 원씩 넣은 박스 62개, 1억2,000만 원 넣은 박스 1개 등 총 63개 박스를 2.5톤 화물탑차에 실어 준비했죠. 접선 장소는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 주차장.

LG 측 인사는 휴게소 매점에서 이 후보 측 사람에게 자동차 키와 화물칸 키를 건넸고, 이 후보 측은 트럭을 그대로 운전해서 갔다 하네요. 사과상자 몇 박스를 트렁크에서 직접 꺼내 다른 트렁크로 옮겨 나르는 건 이들에겐 '티 나는 하수'의 수법이었던 거죠. 트럭은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LG 측에 의해 회수됩니다.


이에 뒤질세라 현대차 그룹은 승합차 스타렉스를 이용합니다. 2억 원짜리 사과박스 10개, 1억 원짜리 박스 30개, 50억 원을 스타렉스에 실어 2차례, 총 100억 원을 날랐는데요. 이번에도 만남의 장소는, '만남의광장' 휴게소였네요. 이 와중에 삼성은 좀 달랐습니다. 삼성은 고액채권 152억 원을 책으로 포장해 전달했다고 합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한탄 "돈 안 드는 정치가 그리 힘드냐"

이렇게 불법으로 받은 돈이 이 후보가 속했던 한나라당은 823억 원에 달합니다. 그렇다고 당시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가 몸담았던 민주당은 깨끗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가 쓴 불법 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당시 민주당 역시 113억 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죠.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까지 줄줄이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며 정치적 타격을 피하지 못합니다.

여야를 떠나 불법 정치자금 헌납과 이로 인한 정경유착은 후진적인 한국 정치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거죠. 오죽했으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나서 "돈 안 드는 정치하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안타까움을 표명했을까요.


'차떼기' 사건으로 정치 혐오가 극에 달하자, 극약 처방으로 나온 게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 일명 오세훈법입니다.

'돈을 적게, 그리고 투명하게 쓰는 정치'를 만들자는 게 핵심인데요, 법인 및 단체 정치자금 기부 금지, 중앙당의 후원회를 비롯한 정당 후원회 금지, 정치자금 기부의 실명제와 정당의 회계보고 절차 강화 등이 뼈대를 이루고 있죠.

그럼 오세훈법으로 정경유착의 뿌리는 뽑혔을까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불거진 최시중 게이트, 성완종 리스트 등만 보더라도 불법 대선 자금의 유령은 여전히 정치권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차떼기'는 사라졌으나, '쪼개기' 후원(청목회 사건) 등 변종 정치자금 헌납 형태도 속출했죠. 한편에선 신인 정치인이나 돈 없는 소수정당의 진출을 가로막는다는 한계도 꾸준히 지적됐죠.

이에 학계에선, 정치자금의 유입과 사용을 묶어 규제하기보다 정보 공개를 강화해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차떼기'의 충격파를 넘어서기엔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네요.



그 많은 돈 어디서 구하냐고? 국민 혈세, 나라 곳간에서

그럼 다시 '쩐의 전쟁'으로 돌아와 볼까요.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대선 판에도 새로 도입된 게 완전 선거공영제입니다. 나라에서 일정 한도를 정해놓고, 그 이하로 쓴 만큼 보전해주는 거죠. 후보들이 미리 자체적으로 돈을 마련해 쓰고 나중에 돌려받는 구조입니다.

후보자의 경제력이 선거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돈이 없어도 유능한 후보가 나올 수 있게 공정한 출발선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인데요, 물론 그 돈은 우리 국민 세금에서 나갑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다 돌려 주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반환의 기준은 득표율. 후보자 난립을 막기 위해 유효투표의 15% 이상 득표 시 지출 비용 전부를, 10% 이상, 15% 미만이면 절반만 되돌려줍니다.


그럼 한도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요? 전국 총인구수에 950원을 곱한 금액에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결정되는데요.

최근 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내년 3월 치러지는 '개나리 대선'인 20대 대선 출마 후보자들의 선거 비용 한도는 513억900만 원으로 결정됐네요. 19대 대선은 509억9,400만 원, 18대는 559억7,700만 원, 17대는 465억9,300만 원이었습니다.

참고로 지난 19대 대선에서 각 정당이 실제 지출한 선거비용은 ▲더불어민주당 약 483억 원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약 339억 원 ▲국민의당 약 430억 원이었습니다. 정말 억억억 소리가 나죠.

나중에 보전해준다지만, 당장 수백억 원에 달하는 돈을 구한다는 건 쉽지 않죠. 일단 믿는 구석은 선관위가 지급하는 정당 보조금입니다.

원내 정당의 경우, 국회의원 의석수와 직전 총선 정당별 득표 비율 등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요, 19대 대선 기준 총 421억4,200만 원이 나갔네요.

더불어민주당(119석)이 123억5,70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자유한국당(93석) 119억8,400만 원, 국민의당(39석) 86억6,900만 원, 바른정당(33석) 63억4,300만 원, 정의당(6석) 27억5,700만 원 순이었습니다.

물론 후원금도 별도로 모집할 수 있는데요, 선거비용 제한액에서 5%로 마지노선을 두고 있어 상대적으로 큰 금액은 아니죠.



돌려받을 자신 있다면... 정치인 펀드 '플렉스'

이렇게 나랏돈을 끌어모아도 '돈줄'은 목이 마릅니다. 이때 동원되는 것이 펀드나 대출인데요, 돌려받을 자신이 있는 후보들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겠죠.

지난 18대 대선에선 '펀드' 열풍이 불었습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약속펀드'개시해 250억 원을 달성했고, 민주당은 '담쟁이펀드'로 300억 원을 채웠네요. 펀드 모금 규모에선 민주당이 앞섰지만, 대선 결과는 새누리당의 승리였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펀드 세일즈에 직접 나서며 "제가 돈을 빚지는 것이 아니라 돈과 함께 마음을 빚지는 것 같다"며 "정권 교체를 통해 이자뿐 아니라 보너스까지 갚아 드리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고배를 마셨죠.

그러나 두 번째 도전인 19대 대선에선 '국민주 문재인' 펀드로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결국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죠.

이 펀드는 1시간 만에 목표액 100억 원을 훌쩍 넘는 329억8,063만 원을 모으며 대박을 쳤는데요, 당시 이자율이 16개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대출 평균금리를 적용한 연 3.6% 수준이니 유권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투자였던 것 같죠?


펀드 말고 대출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19대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시도당사를 담보로 250억 원의 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했는데요. 당내에선 혹시나 득표율이 15% 미만으로 나와, 대출금이 회수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다는 얘기도 들렸습니다.

홍 후보의 부진은 정치적으로 보수가 무너지는 상징성 말고도, 한국당을 실제 파산으로 내몰 수 있는 위기였던 거죠. 다행히 홍 후보는 24%를 득표해, 한국당 당사 건물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지지율 낮은 후보들은 허리띠 졸라 매는 '짠순이 선거'

그래도 이렇게 돈이라도 빌릴 수 는 후보들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당세가 약하고, 지지율이 낮아 상환을 장담할 수 없는 후보들은 대출, 펀드 등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인데요. 19대 대선에서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정당보조금과 후원금만으로 선거 자금을 충당하며 '긴축재정'에 들어갔었죠.

그야말로 '짠순이 선거'를 치러야 했지만, 그 속에서도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려 애썼습니다. 당장 선거공보물의 두께부터 차이가 났는데요. 타 후보들과 달리 16페이지가 아닌 8페이지로 만들며 비용을 아꼈죠.


선거 홍보의 '꽃'인 방송 찬조연설도 하지 않는 대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입소문 유세'에 집중했는데요,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면 꽤 효율적인 홍보 전략으로 보입니다. 또 유세차와 선거운동원도 최소화하고, 의원이나 당협위원장들이 스쿠터나 자전거 등을 이용해 '일당백' 선거전을 펼치기도 했죠.

수백억 원의 비용을 쏟아내는 거대정당 입장에선 '짠내 난다'고 할지 모르지만,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대선 풍경을 바꾸는 변화의 시작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드네요.


개나리 대선도 '돈 먹는 하마?' 쓴 만큼 제대로 값어치해야

20대 대선이 내년 3월 9일로 다가온 가운데, 대선주자들의 '쩐의 전쟁'도 본격 막이 올랐는데요,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대표, 추미애 전 법무 장관은 후원금 모금에 열을 올리고 있죠. 자랑도 빼놓지 않습니다.

후원금을 얼마나 빠른 시간에, 많이 모았느냐가 지지도를 가늠하는 척도일 수 있기에, 일종의 기선제압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야권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보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정당에 입당하지 않고, 대선 예비후보기간에 개인 자금 또는 후원금으로 버티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전망에서죠. "지금까지 (무소속 신분으로) 대선 단일화 때까지 끌고 간 정치인은 정몽준, 안철수밖에 없다"(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고 하니 고민이 되겠죠.

반 전 총장의 중도 하차 사례처럼, 돈이 대선 구도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되는 '웃픈' 상황이 또 반복될지 지켜봐야 할 일이네요.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단 몇천 원이라도 우리 호주머니에서 이 어마무시한 선거비용이 나간다는 사실이겠죠?

억 소리 나는 쩐의 전쟁에서, 수백억 원을 수백 배로 뛰어넘는 값어치를 할 수 있는 후보를 뽑아야, 손해 보지 않는 장사라는 거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강윤주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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