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성평등 가치 확산과 사회적 약자 지원 전담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야당인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제기된 '여성가족부 폐지론'에 대해 정영애 여가부 장관이 14일 정면으로 반박했다. 여가부 폐지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 장관이 이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것은, 최근 한층 깊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과 내년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맞물리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여가부 폐지론자들의 주장은 ①실효성 없는 정책에 ②젠더갈등만 조장하니 ③굳이 독립 부처로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 장관은 이 논리를 하나하나씩 반박해 나갔다.
박원순 전 시장 사건과 공군 성추행 은폐 사건 때마다 여가부는 두들겨맞았다. 아무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여가부는 조사와 시정명령 권한이 없다. 그보다는 장기적인 조직문화 개선이 여가부의 몫이다.
정 장관은 "성차별 피해자 구제업무는 국가인권위원회로, 보육은 보건복지부로 이관되면서 여성과 가족 정책을 더 통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정책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현실적 권한의 한계가 있다 해도 좀 더 애쓰고 적극적인 행정을, 먼저 나서서 펼쳐 보이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여가부는 여성 편만 드는 부처가 아니다. 흔히 '여성할당제'로 불리는 공무원 양성평등채용목표제만 해도 그렇다. 이 제도는 특정 성이 정원의 30%에 미달하면 그 성별을 정원 외로 추가 합격시킨다. 도입 당시엔 여성 채용 확대가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됐다. 이 제도로 2015~2019년 국가직·지방직 채용에서 추가 합격한 인원은 1,600명가량인데, 이 가운데 1,200명이 남성이었다. 여가부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지원받는 피해자의 20%도 남성이다.
정 장관은 "여성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여성, 남성 모두 공존하자는 게 여가부"라며 "필요하다면 부처 이름을 '양성평등부'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폭력방지법'도 '젠더폭력방지법'으로 바꾸면 된다.
독립부처여야 하느냐는 지적에 정 장관은 사회적 약자 문제를 딱 쥐고 추진해갈 부처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정부의 다른 각 부처는 노사 문제, 노인 지원, 아동 지원처럼 사회 전반적인 사안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 복귀 문제, 한부모가족의 양육비 이행률 제고, 학교밖청소년 지원, 성범죄 피해자 보호 같은 업무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정 장관은 "성평등 문제에 대해 중심을 잡고 추진하고 독려하는 여가부가 전담 부처로서 자리잡고 있을 때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제 폐지, 양육비 이행법 제정,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 구축 등은 여가부 없이는 불가능했을 사업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