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가 폐지론을 넘어서는 길

입력
2021.07.14 18:00
26면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보수정당서 또 불거진 여가부 폐지 주장
여가부 축소한 MB정부 2년 만에 되돌려
여가부 정책 역량 키워 폐지론 돌파해야


올해 스무 살을 맞은 여성가족부가 또 존폐 논란에 휘말렸다. 유력 보수 정치인들이 앞다퉈 여가부 폐지 주장을 꺼내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여가부 폐지를 공약했던 유승민 전 의원, 20대 남성들의 반(反)페미니즘 성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듯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같은 당 하태경 의원 등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들 표는 다 포기할 각오냐’라는 안팎의 반발에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새지만 ‘젠더 갈등을 부추키는 부처’라는 이들의 자극적 프로파간다는 대선 때까지 여가부 폐지론의 불씨를 지필 것 같다.

보수 정당 입장에서는 김대중 정부 작품인 여성가족부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아쉽지 않은 부처였다. 실제로 서울시장 시절 여성정책관을 폐지한 전력이 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에서 여가부를 보건복지부와 통합하려 했다. 야당과 여성계의 반발로 포기했으나 예산과 조직을 크게 줄였다. 출범과 함께 가족ㆍ보육 업무를 복지부로 이관시켰고 인원 102명의 초미니 부처 ‘여성부’로 축소했다. 보수 정당은 ‘남성 부양자-여성 가사노동’이라는 개발시대의 성별 분업 모델과 친연성이 강한 데다가, 작고 실용적인 정부라는 이념을 선전하는 데도 여가부 축소는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이명박 정부가 2년 만인 2010년 입장을 바꾼 것은 시사적이다. 청소년ㆍ가족ㆍ아동업무 일부를 복지부로부터 다시 가져왔고 이름도 여성가족부로 복원했다. 2008년 말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결정타였다. 이복실 전 여가부 차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실업자가 늘고 여성 경제활동률이 크게 낮아지자 정권에 비상이 걸렸다”며 “경력단절 여성 문제와 경제위기로 심화한 위기 청소년 문제를 여성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니 위에서도 생각을 바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이미 1997년 외환위기의 여진으로 전통적인 남성 부양자 모델이 붕괴됐으며 맞벌이 부부 증가, 이(재)혼율 급증 등 가족관계의 대전환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가족 정책을 주변화시키려는 정치적 발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었는지가 증명된 것이다.

인력과 예산의 한계가 있었다 해도 이후 여가부가 제대로 존재감을 못 보여 준 점은 분명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성평등 정책 주무부처로서의 임무를 방기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로 폐지 논란을 자초했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을 비판했던 정현백 장관이 석연치 않게 물러난 걸 시작으로 지난해 고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후 피해자를 ‘고소인’이라고 칭하면서 2차 가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까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국 여가부가 존폐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정책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지정치 연구자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최근 펴낸 '한국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에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보편적 보육 확대가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던 참여정부 당시 여가부는 시장 원리에 입각해 보육 확대를 주장하는 예산 부처, 민간보육시설 등을 견제하면서 보육의 공공성과 젠더 감수성이 반영된 보육정책들을 관철해냈다. 대통령의 적극적 지지 덕을 봤지만 스스로 정책 역량을 발휘해 존재 이유를 증명한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에 속한다. 개선되는 듯한 출산ㆍ육아기 여성의 취업률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다시 나빠지고 있다. 여가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아직도 차고 넘친다. 스스로 그 능력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