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7월 24일 에게해 남동쪽에 자리 잡은 그리스 코스섬,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여름 오후. 마당에서 뛰놀던 생후 21개월의 영국 남자아이 벤 니덤은 자기 머리에 물을 뿌리더니 이내 깔깔 웃으며 다시 잔디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벤의 엄마인 케리 니덤이 아침에 호텔로 출근한 탓에 조부모인 크리스틴·에디 니덤 부부가 농장 건물을 고치며 딸 대신 손자를 돌보는 중이었다.
처음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크리스틴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벤은 겨우 세 살배기 아이였다. 아장아장 걷는 걸음으로 멀리 가 봤자 근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농장 근처를 샅샅이 뒤졌지만 벤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11일 동안 온 섬을 다 뒤졌다. 경찰과 소방대원은 물론, 그리스 육군까지 투입됐다. 농장 주변에 있던 15에이커 규모의 올리브밭과 석류 과수원을 샅샅이 수색했고, 근처 강가와 수풀까지 살폈다. 하지만 벤은커녕, 아이 옷가지나 발자국 하나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벤이 유괴 또는 납치를 당한 것인지, 그냥 길을 잃은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살아있는지, 죽은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수색을 맡았던 그리스 당국도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코스섬 경찰 총책임자였던 니콜라오스 다코우라스는 당시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모두 수색했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며 “이번 사건은 굉장한 미스터리고, 우리에겐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수색 포기 선언이었다.
1990년 그리스로 이주했던 니덤 가족은 벤의 실종 2개월 뒤 고향인 영국 사우스요크셔주(州) 셰필드로 돌아갔다. 코스섬을 떠났지만, 벤을 찾겠다는 희망까지 버린 건 아니었다. 엄마인 케리를 필두로 조부모는 물론, 외삼촌까지 나서 그리스와 영국 방송사에 연락해 벤에 대한 제보를 기다렸다.
가족의 노력이 효과를 본 것일까. 실종 후 첫 1년간은 300건이 넘는 제보가 쏟아졌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부모 없이 혼자 있는 금발 아이를 봤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아테네의 한 다리 아래에서 벤을 닮은 어린이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든가, 금발 어린아이가 세차장에 혼자 머물고 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모두 또래의 닮은 아이였을 뿐, 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995년엔 꽤 유력한 제보가 있기도 했다. 그리스 살로니카에서 집시 부부가 벤과 닮은 금발 어린이를 키우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한 사설 탐정의 전언이었다. 가족은 드디어 벤을 찾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아이의 친부모는 따로 있었다.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자, 아들을 집시 부부에게 맡긴 것이었다. 희망은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소득 없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가족은 점점 지쳐 갔다. 조부모인 크리스틴과 에디는 손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졌고, 엄마 케리는 남자친구이자 벤의 아빠였던 사이먼 워드와 이별하게 됐다. 그렇다고 포기한 건 아니다. 2003년부터 직접 벤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실종 사건 수사에 진척이 있을 때마다 관련 사실을 업로드했고, 2010년대 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성화되자 ‘벤을 찾습니다’라는 명칭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제보를 계속 기다린 셈이다.
간절한 가족의 바람과는 달리, 2016년 9월 벤이 실종 당일 사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코스섬의 한 주민이 굴착기 기사였던 자신의 친구 콘스탄티노스 바르카스가 굴착기를 운전하던 중 실수로 벤을 들이받아 죽였고, 시신을 근처에 묻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한 것이다.
문제는 바르카스가 1년 전 이미 위암으로 사망했다는 점이었다. 유력한 용의자가 세상을 떠났으나, 사건을 담당해 온 사우스요크셔 경찰은 해당 진술의 신빙성이 높다고 봤다. 실종 당일인 1991년 7월 24일 벤이 사라진 농장 뒤편에서 굴착기를 포함한 중장비들이 사용된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은 케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면서 벤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했다.
경찰은 2016년 10월, 3주에 걸쳐 코스섬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무려 800톤이 넘는 흙을 파냈다. 하지만 벤의 시신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핏자국이 묻은 장난감 자동차와 아동용 샌들만 발견됐다. 사우스요크셔 경찰은 “벤의 물품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벤의 사망이 유력하다”고 발표했다. 장난감 자동차와 샌들은 영국으로 옮겨졌고, 핏자국 주인 확인을 위한 포렌식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영국 대중은 물론, 니덤 일가 역시 벤이 숨졌을 거라고 여겼으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2018년 11월 영국 경찰은 “장난감 차와 샌들은 벤의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핏자국을 분석한 결과, 벤의 DNA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2017년부터 “경찰이 무리한 수사로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몰아간다”고 주장했던 굴착기 기사 바르카스의 자녀들도 “그로 인해 가족이 겪은 피해에 대해 사우스요크셔 경찰이 사과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마리를 찾은 듯했던, 마침내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벤 실종 사건’은 또다시 미궁에 빠졌다. 케리는 “벤이 코스섬 어딘가에 있는 채로 작별 인사를 할 순 없다”며 “아이가 죽었다 해도 시신을 찾아야 하니, 제발 장소를 알면 도와 달라”고 언론에 호소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벤의 행방이나 시신에 대한 소식은 전혀 없다.
벤이 사라진 뒤 30년간 케리와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들을 가장 힘들게 만든 건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케리는 2016년 굴착기 사망설이 제기됐을 당시 “그간 수많은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우리를 25년 동안이나 괴롭게 했느냐”면서 생사도 모른 채 아들을 기다렸던 기나긴 시간에 울분을 토했다. 2009년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만 네 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벤을 기다리는 일상에 지쳐 차라리 사망 소식이라도 들렸으면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아들의 죽음을 바라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곤 환멸을 느끼는 삶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케리와 가족은 벤을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8년 DNA 불일치 결과가 나온 이후 케리는 매번 언론 인터뷰에 나설 때마다 “벤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며 “이건 엄마의 본능”이라고 했다. 실종 28년을 맞은 2019년엔 “옳은 일을 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면서 ‘범인’을 향해서 “사건의 진실을 안다면 털어놓으라”고도 촉구했다.
14일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선 다른 실종아동 부모들에게도 위로를 건넸다. 케리는 “하루하루가 힘들겠지만 희망을 갖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 아이를 만날 날이 올 것”이라며 “그날을 생각하며 힘을 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1년 현재 ‘벤을 찾습니다’ 트위터 계정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게재돼 있다. “누군가는 벤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